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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블랙스⑫ 투 올드 힙합 키드 '당신들의 힙합은 여전히 괜찮습니까?'
조성호 작성 | 2011-12-26 17:08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8 | 스크랩스크랩 | 31,173 View



1.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의 엔딩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마짱,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그리고 [투 올드 힙합 키드]를 연출한 정대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내 이루지 못한 꿈과 다시 마주하기 위해, 새로운 꿈을 위해, 마이크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이것이 나의 힙합이다!"
 
내가 지금 소개하려는 정대건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투 올드 힙합 키드, Too Old Hip-Hop Kid](2011)는 그의 첫 번째 연출 작품이다. 하지만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필름블랙스'에서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힙합을 ‘소재’로 한 장편 다큐멘터리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가 더욱 눈길을 끄는 이유는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은 감독이 바로 랩퍼(Rapper)를 꿈꾸던 '힙합 키드'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영화사에 단 한편이라도 힙합(랩)을 내세워 사람들의 피를 들끓게 했던 영화가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정대건 감독은 직접 화자가 되어 영화를 끌고 간다. 내용은 간단하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위해 꿈을 꾸는 일. 그래서 그는 카메라를 들었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동료와 선배를 찾아가 그들을 찍기 시작한다.  
  
2. 정대건 감독은 자신이 몸담았던 T.R.F(The Real Flavah) 크루(Crew)에서 랩(Rap)을 했었는데, 동료 뮤지션들이었던 허클베리 피(Huckleberry-P), 제이제이케이(JJK), 투게더 브라더스(Together Brothers)의 지조, 그리고 디제이 샤이닝 스톤(DJ Shinin’ Stone) 등은 여전히 힙합과 함께 자신들의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힙합을 했던 류현우, 장지훈, 김기현 이 세 명은 지금은 힙합이 아닌 자신들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20대로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랩을 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힙합과 멀어졌다. 그들은 한때 같은 꿈을 꾸었다. 랩을 포기한 친구들은 그 시절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한 동시에 그립기도 하지만, 힙합에 대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는 마음도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을 정대건 감독은 정직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뮤지션의 모습과 평범한 삶을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면서 그들의 삶을 똑같이 화면에 드러낸다.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사실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그들은 결국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모습이다. 정대건 감독은 화려한 힙합퍼의 모습을 그리지도 않았고, 포기한 이들의 얼굴을 어둡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또한, 단지 이들의 삶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힙합'을 영화 언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투 올드 힙합 키드]는 힙합을 소재로 선택했지만, 힙합을 소개하고 대한민국 힙합퍼들의 현실을 말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정작 정대건 감독이 말하려는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꿈과 현실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가는 20대, 바로 정대건 감독 자신과 추억을 함께 했던 이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고민하는 많은 20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영화다.  


 
3.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프리스타일 랩(Freestyle Rap & Battle)이나 적절하게 배치된 힙합 음악들, 그리고 감독이 보여주려는 이미지를 가사로 표현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기존 힙합 팬들에게는 즐거움을 주고, 힙합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다큐멘터리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투 올드 힙합 키드]가 다른 독립 다큐멘터리보다 특별히 더 '괜찮다.'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겠지만, 정대건 감독이 전하려는 이야기의 씨앗이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되기에는 충분했다. 이야기는 단순했지만,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가리온(Garion), 셔니슬로우(Sean2slow), 바스코(Vasco), 술제이(SoolJ), 소울맨(Soulman), 샛별 등의 모습도 힙합 팬들에겐 좋은 볼 거리를 제공한다. [투 올드 힙합 키드]을 보고 난 후, 가장 인상적인 점은 힙합 음악인의 비루한 현실을 까발리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힙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힙합찬양'을 하는 다큐멘터리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서 함께 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우리 사회의 20대들에게 행복하냐고, 자신들이 꿈꿔왔던 그 찬란했던 순간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느냐고 묻는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정대건 감독은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도, 그렇다고 섣불리 위로를 건네지도 않는다. 아직 우리들의 '힙합'(꿈)이 끝나지 않았고, 영원히 힙합 안에서 살 거라는 다짐을 말하면서 막을 내린다. 여전히 그들의(우리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고, 영원히 그 꿈은 계속 될 것이다. [투 올드 힙합 키드]를 본 나는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 냈다. '당신들의 힙합(꿈)은 여전히 괜찮습니까?’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소중한 당신들의 삶으로 지속 될 것이다. 
 
p.s
12월8일부터 16일까지 열렸던 ‘제37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부문에서 상영된 [투 올드 힙합 키드]는 '관객상'과 더불어 '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관객상은 인기가 많고, 관객의 만족도에 따라 높은 호감을 보인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지만(물론, 폄하는 아니다), '우수 작품상'은 그저 인기가 있다고 주는 상이 아니다. 그 만큼 잘 만들었다는, 가치가 있다는 증명일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매년 우수한 한국 독립 장/단편 영화가 보여지는 영화제이기도 하다. 정대건 감독의 [투 올드 힙합 키드]는 분명히 많은 한국 힙합팬에게 좋은 선물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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