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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듀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 된 북미의 트렌디한 장르 음악을 적절히 차용한 -다수의 멤버가 팀을 이뤄 곡 단위 퍼포먼스를 벌이는- (춤을 추게 하는 것이 아닌,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 댄스음악 열풍은 가요 기획자들에게 새로운 성공방정식과 화두를 던져주었다. 가요순위 프로그램 방송분량에 맞추어 노래 담당, 랩 담당, 댄스 담당 등 역할분담을 하고, 억지로라도 작곡, 작사를 시켜 음악적인 정당성(?)을 얻는다든지, 앨범단위의 활동 후 휴식기를 갖는 등의 성공방정식을 따라 비슷한 성공을 얻으려 했던 기획자들의 손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H.O.T’, ‘젝스키스’ 가 탄생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어설픈 기획이었지만, 결국 그 시대의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시대에 맞는 기획이었음을 말해준다. 같은 이유로 반대 지점의 음악을 즐기는 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했고,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멤버 예명을 들고 나온 "동방신기"를 기점으로 기획된 댄스 가요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던 현상을 기억한다. 하지만 결국 승리한 쪽은 시행착오와 성공케이스를 동시에 갖고 끊임없이 움직인 영리해진 기획자들이었다. 이유는 복잡하고도 간단하다. 계속 높아지는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버릴 것은 즉각 버리고 취할 것은 취했기 때문이다. 취향 차는 젖혀놓더라도, 음악과 퍼포먼스의 빈틈을 재빠르게 메우고 나아가 사생활까지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기획자들의 잘 주조된 결과물을 공격하기란 쉽지 않다. 케이팝 문화를 만든 것은 바로 끊임 없이 견고해지려는 “결벽증”이었던 것이다. 기획자와 퍼포머 그리고 팬까지 그 결벽증이 만들어 낸 규칙에 따라 탄생시키고 활동하고 응원한다. 케이팝은 그렇게 견고한 틀을 가진 독자적인 문화가 되었다.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는 어느 방향에서 어떤 면을 보더라도 자국의 것과는 몇 단계 위에 올라가 있는 한국의 아이돌 문화에 경의를 표했고, 유럽의 일부 젊은이들은 고리타분한 고급문화의 평가 잣대가 적용될 틈이 없는 더는 즐거울 수 없는 퍼포먼스를 마음껏 즐겼다. 그렇다면 전세계 대중문화의 중심인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우리가 봐도, 그쪽에서 봐도 결국 돈에 따라 움직인다. 처음엔 돈을 찾아 우리가 공략해야 할 땅이었다. 성공의 포화는 천문학적인 돈이 넘실대는 미국을 다음 대상으로 지목했지만, 평생 타국의 대중문화를 전혀 겪어보지 못하는 대중이 대부분인 미국시장에서 실패는 당연한 결과였다. 케이팝의 성공방정식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몇 도전자를 제외하고는 견고하게 구축된 틀 안에서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된 활동구역(이를테면, 한인교포 사회)을 선택하고 집중했다. 그런데 최근 일종의 반전이 일어났다.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팝 시장에서 큰 영향력과 돈을 움직이는 케이팝에 미국이 반대로 먼저 손을 뻗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방한하여 힙합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힙합 프로듀서 스위즈 비츠(Swizz Beatz)의 움직임은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하다. (*관련 뉴스: http://board.rhythmer.net/src/magazine/news/view.php?n=9135&p=2) 힙합 장르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긴 했지만, 현 힙합 씬에서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 친히 한국의 문화 콘텐츠에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 한국의 로컬 힙합 씬에는 아무런 볼일도 관련도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일 뿐이다. 이미 사업가로서 이름값을 하고 있는 그가 CEO로 있는 메가업로드의 폐쇄 이후, 새로운 사업모델을 빠르게 찾아냈다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의, 그것도 미국 시장에서 하위문화에 가까운 아시아의 대중음악을 자국으로 갖고 가겠다는 것은(그것도 문화를 통째로), 음악보다 완벽에 가까운 기획으로 케이팝 씬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매우 견고한 엔터테인먼트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 등 유명 아티스트의 참여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는 상품을 가져다 팔기 위한 최소한의 포장일 가능성이 크고, 동시에 미국 아티스트의 내한 등도 활성화하겠다고 했으니 도전하여 개척하고 지분을 차지하려는 프론티어가 아닌, 중간 무역상에 가깝지 않을까. 어쨌든 아까 언급했듯이 서글프게도 스위즈 비츠가 얼굴마담을 하는 이 사업에 힙합은 있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케이팝에 힙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장르 음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과연 세계적으로 비주류인가? 그것도 아닌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 20년을 거치며, 전국구 방송을 통해 홍보를 할 수 있는 주류 기획자들은 도전보다는 실패사례의 철저한 폐기와 성공케이스의 강화를 추구했다. 좋게 이야기하자면, 건전하고 보수적인 경영방식이다. 하지만 그것이 케이팝의 정체를 유발할지도 모르겠다. 아티스트가 아닌 퍼포머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기획을 위한 연습생과 오디션은 넘쳐난다. 이런 현상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미화되고,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결벽적인 기획에 준비된 인재로 참여하기 위해 ‘모창의 달인’이 되어간다. 실패든 성공이든 그 바로 다음의 또 다른 성공을 위한 문화 상품 기획의 인프라는 강화되지만, 정작 대중문화, 지역문화 자체의 인프라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아진 것이다.
나는 스위즈 비츠와 윌아이엠(Will.I.Am) 같은 아티스트들이 한국까지 와서 구애하는 것은 오히려 현재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이 정체기를 맞이했다는 힌트라고 생각한다. 결코 쉽게 움직이지 않는 미국 투자자들의 눈에 케이팝이 완성에 가까운 상품으로 보였다는 것이고, 실패 요인들이 철저하게 배제되며 성장한 케이팝 문화가 그 성공 원인들을 유지하면서 실패 카테고리에 묶여있던 것들, 즉 장기적으로 케이팝이라는 변태적인 장르 구분법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더 의미 있는 성공을 가져다 줄 장르적, 지역적 문화 인프라 구축을 위한 요인들을 끼워 넣기에는 너무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서 아이돌 중심의 퍼포먼스 케이팝이 미국의 하위문화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 잡고, 국내에서도 거품이 꺼지고 일정 수준으로 정체되어서, 그 반대급부로 로컬 장르 씬의 지분이 조금이라도 넓어지길 기대할 뿐이다. 대중화라는 이상한 모토아래 장르 아티스트가 어설프게 대중음악 기획자의 성공방정식에 맞춘 모습으로 변하고, 장르 팬들마저 비아냥대신 응원을 보내는 모양새도 별로인데다가 이미 그들만의 성공법칙이 확고한 주류 기획자들이 있는 그대로의 장르 음악인들을 프로모션하는 것도 상식적으로 기대할만한 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남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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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K-POP문화가 상품으로써의 문화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고 맞는말이기에 더 씁쓸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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