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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기이한 '현아의 립싱크 태도' 논란
남성훈 작성 | 2012-04-23 16:26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32 | 스크랩스크랩 | 30,695 View



아이돌 댄스 그룹 '포미닛'의 간판 멤버 현아의 립싱크(Lip Sync) 태도 논란. 경위는 이렇다. 뮤직뱅크의 포미닛 컴백무대에서 공연을 하며 본인의 파트에서 말 그대로 AR(All Recorded)과 입술을 맞추는 립싱크 행위를 성심성의껏 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성실하게 립싱크를 하지 않은 현아의 모습은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발 빠르게 전파되었고, 쏟아지는 비난 여론이 기사화되자 컴백 시기임을 고려해 현아와 소속사는 실수가 있었다며 발 빠르게 사과를 했다. 여기서 잠깐, 확실히 하고 넘어가자. 나만 갸우뚱거렸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립싱크'와 '논란' 사이에 '태도'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고, '태도'는 '립싱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현아의 사과 역시 '태도'를 향하고 있고 '립싱크'를 향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대다수 대중과 언론은 이 경계 안에서 문제를 끌어내고 판단하며 해결책을 강구했다.

이 작다면 작은 사건은 립싱크 논쟁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한류를 이끄는 아이돌 중심의 한국 대중음악 문화를 불편하게 바라보게 하고 몇 가지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일단 립싱크부터 생각해보자. 80년대 말, 소방차, 박남정, 김완선 등 방송 무대로 진출한 댄스 가수들 덕분에 립싱크는 대중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분명 앨범 제작 시 제작자의 고려대상이나 치밀한 선 기획의 결과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댄스 카테고리를 일종의 서커스를 보여주는 식으로 분량을 만들기 시작한 방송국의 의도와 환경의 영향이 컸으리라. 립싱크의 본격화는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에서 시작되었다. 그룹 안에서 퍼포먼스를 짜는 멤버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립싱크를 활용해 더 많은 것을 보여줄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음악을 책임지는 멤버와의 철저한 분업화는 대중들에게 묘한 예술적 결합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 기이한 정당성 획득은 아직도 이 두 그룹을 평가하는데 립싱크 퍼포먼스가 논외로 치부되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들의 성공방정식을 벤치마킹하여 기획된 'H.O.T', '젝스키스'를 선두로 하는 수많은 후속 댄스 그룹들은 선배들이 가지고 있던 '예술적 아우라' 같은 것은 애초에 획득하는 데 실패했고, 반대지점의 음악을 듣는 대중으로부터 혐오는 극에 달해갔다. 당연히 '립싱크' 역시 주요한 비난의 대상으로 재발견된다.


문제의(?) 뮤직뱅크 방송 장면 

방송국에서도 립싱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받아들여, 대중음악 순위프로그램에서 립싱크를 금지하거나, 립싱크 시 화면에 테이프마크를 띄웠으며, 아예 립싱크가 없는 프로그램을 표방한 심야 음악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이상한 구분법으로 '고급가요', '가창력', '록 밴드', '장르음악' 등의 코드들을 몰아놓기도 했다(이런 컨셉트의 프로그램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지금에 와 승리한 쪽은 견고한 성공모델을 구축해 놓은 기획자들이다. 높아지는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빈틈없는 퍼포먼스를 만들어내고, 더 큰 성공을 위해 사생활까지 통제하며 스케줄을 짜는 기획자들에게 '립싱크'는 점점 성공의 작은 걸림돌이 되어갔다. 립싱크 퍼포먼스를 '장르'라고 까지 소개하며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어내려는 노력은, 견고한 틀을 가지고 세계 시장에서 큰돈을 움직이는 케이팝 열풍을 거치면서 당당하게 설득력을 얻은 듯하다. (한국 방송가요의 립싱크 만연은 외국의 명가수들의 립싱크 사례, 논쟁과는 그 개념이 많이 다르다. 그들의 경우, 대부분 환경적 요인에 따른 일회성이었고, 그 자체에 대한 대중과 매체의 비난 역시 충분하였으며, 상황 자체가 왜곡되어 전파된 경우도 상당하다.)

체계적인 교육과 오디션을 통해 보컬의 기본기는 대부분 탄탄해졌고, 이제 대중은 누가 립싱크를 하든지 라이브를 하든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라이브로 성량만 뽐내주면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대신 대중은 기획자들의 '결벽증'이 10년 이상을 거치며 만들어 낸 아이돌 가수의 틀에 동의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평가할 뿐이다. 그래서 그 기획의 틀 안에서 데뷔했다는 것은 대중과도 어떤 식으로 활동하겠는지 약속을 한 셈이 된다. 대중은 이제 소비자인 동시에 감시자가 되고 관리자가 된 것이다. 이번 해프닝의 비난의 화살이 ‘립싱크’가 아닌 ‘태도’에 꽂힌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장르적으로 분화되지 않은, 다시 말해 취향에 적극적이지 않은 대다수 대중이 쉽게 접하는 노출빈도가 높은 아이돌 댄스 음악을 평가하는 잣대는 음악이 아닌 일반적인 사회성이 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이 감시하고 관리한다고 인식하는 틀의 룰을 지키지 않는 것 중 ‘태도’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아티스트가 주는 어떤 일탈적, 예술적 재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은 ‘케이팝’ 문화의 가장 큰 약점이고, 대중이 그것에 피로감을 느꼈을 때 장르 음악인들에게 눈을 돌리게 할 한계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 문화는 가장 큰 돈다발이고, 대중은 장르 취향이나 일정 수준의 안목을 취하기도 전에 기획자들이 구축한 틀을 주입 당했으며, 심지어는 주류에 편입한 장르 아티스트마저 비슷한 틀 안에 집어넣고, 위선적으로 일탈의 폭만 살짝 넓힐 뿐이다. 어쨌든 이번 논란은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이 지난 20년간 유례가 없던 특이 과정을 거치며 어떤 대중을 직접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힌트가 된 듯하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남성훈, 사진: 큐브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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