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The Avengers)]의 흥행 열기가 대단하다. 마블 엔터테인먼트(Marvel Entertainment)는 자사의 슈퍼히어로(Superhero)를 방망이 깎는 노인의 정성으로 한 명 한 명 블럭버스터급 영화로 만들며 캐릭터에 진한 설득력을 부여하더니 결국, 불과 몇 년 전까지 꿈만 같았던 마블 유니버스(Marvel Universe)의 큰 축 ‘어벤져스’를 만들어냈다. 그것도 아주 끝내주는 영화로! 이쯤 되면, 경쟁사 디시 코믹스(DC Comics)의 기대작 [다크나이트라이즈, Dark Knight Rises] 제작진들이 움찔할만하다. 코믹스, 슈퍼히어로를 향한 미국인들의 열정은 대단함을 넘어 부럽다.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세대를 초월한 문화로 거의 모든 미디어를 통해 자리 잡았지만, 오직 북미에서만 초대형 산업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힙합문화와도 닮은 구석도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를 힙합으로 만들어 버리는 래퍼들의 슈퍼히어로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수많은 곡에서 슈퍼히어로를 인용하고, 아예 자신을 코믹스 슈퍼히어로에 대입하여 캐릭터를 얻기도 한다. 그래서 모아봤다. 최강의 슈퍼히어로를 사칭하는 래퍼들. 이름하여 ‘힙합 어벤져스’!
데이비드 배너(David Banner) = 헐크(브루스배너)
미시시피 출신의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배너의 이름이 평범하다고 생각해왔다면,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에서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 준 헐크가 변하기 전 박사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 사람은 데이비드가 아니라 브루스 배너(Bruce Banner)였다고? 78년부터 82년까지 방송되며 전 세계적으로 헐크 열풍을 불어 일으킨 TV시리즈에서 배너의 이름은 바로 데이비드였다(브루스라는 이름이 너무 임팩트가 없다고 변경했다고 한다.). 70년대 유년기를 보낸 74년생 미시시피의 한 어린이는 그것을 자신의 래퍼 이름으로 택한 것이다. 그러니까 온순한 데이비드 배너를 잘 못 건드리면, 우린 아주 그냥 X되는 거다.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 = 아이언맨(토니스타크)
돈을 무기 삼아 후천적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으로 거듭난 토니 스타크(Tony Stark). 그런 점에서 경쟁사의 브루스 웨인과 닮아 있지만, 배트맨으로 변신하면 목소리에서부터 답답함과 우울함이 컨셉트인 웨인과는 다르게 스타크는 동화책 대신 [GQ]를 보고 자란 사람처럼 섹시하고, 허세가 살짝 담긴 위트가 철철 넘친다. 게다가 천재급 두뇌까지. 이 멋진 캐릭터를 누가 가져갔을까? 고스트페이스 킬라의 솔로 데뷔작 타이틀을 기억하는가? 그렇다. [IRON MAN]이다. ‘나는 철의 사나이다!’라는 게 아니라 진짜 그 아이언맨 맞다. 그게 1996년도였다. 토니 스타크와 매칭이 안 돼도 어쩔 수 없다. 먼저 찜 했다. 젊은 래퍼들이 아무리 아이언맨 캐릭터가 탐나도 큰 형님이 선견지명으로 찜 해놓으신 것을 건드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얄밉게도 ‘토니 스타크’란 이름도 함께 사용한다. 센스 있는 마블 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아이언맨] 고스트페이스 킬라의 “Slept on Tony”와 뮤직비디오 형식의 장면을 삽입해주기도 했다(이 곡은 후에 [GhostDeini The Great]를 통해 발매되었다.). 이 형님, 영화보고 얼마나 뿌듯하셨을지 짐작이 간다.
메쏘드 맨(Method Man) = 고스트 라이더(쟈니 블레이즈)
이미 전형적인 슈퍼히어로 작명법인 ‘~맨’으로 래퍼 이름을 정한 메쏘드 맨이 마블 코믹스의 안티 히어로 고스트 라이더의 열혈 팬임은 우탱 클랜(Wu-Tang Clan)의 팬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정규작은 아니지만, [The Ghost Rider Vol.1], [The Ghost Rider Vol.2], 그리고 졸지에 고스트 라이더가 되어 고생하게 된 쟈니 블레이즈의 이름을 딴 [Johny Blaze Strikes]라는 앨범을 발표한 적도 있다. 메쏘드 맨의 고스트 라이더 사랑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면 [Wu-Tang Forever]의 대표곡이자 그들의 가장 사랑받는 싱글 중 하나인 “Triumph”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된다. 바이크를 타고 ‘Transform into Ghostrider’ 구절이 담긴 랩과 함께 불을 뿜으며 뉴욕시를 질주하는 장면이 있다. 아마도 실사로 등장한 첫 번째 고스트 라이더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스트 라이더 코믹스 팬들은 얼떨결에 첫 번째 실사판을 만났다나 뭐라나. 세금 추징 때문인지 어쩐지 피곤함에 절어있는 얼굴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등장하는 2007년 작 영화를 보며, 메쏘드 맨은 분명 거울 앞에서 자기가 훨씬 낫다고 확신했을 듯.
MF 둠(MF DOOM) = 닥터 둠
가장 코믹스 캐릭터를 적극 활용하는 힙합아티스트는 논의의 여지 없이 래퍼이자 프로듀서인 MF둠이다. 슈퍼히어로의 상징인 코스튬을 직접 하고 공연을 하는 수준이니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마블 코믹스의 닥터 둠은 사실 슈퍼히어로가 아닌 그들에게 대항하는 악당인 슈퍼 빌리언(악당)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 좀 대박이다. 스파이더맨, 블레이드, 퍼니셔, 아이언맨과 맞짱을 뜨고, 어벤져스, 판타스틱 4 등 단체를 상대하기도 한단다. 처음 MF둠은 뭐가 그리 부끄러웠는지 무대에서 스타킹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하는데, 이후 닥터둠이 쓰고 다니는 메탈마스크를 착용하다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한다. MF는 ‘메탈 페이스(Metal Face)’의 줄임 말이며, 프로듀서로 활동할 때는 ‘메탈 핑거스(Metal Fingers)’로 통한다. 그는 수많은 콜라보 작업으로 유명한데 드디어 자칭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인 고스트페이스 킬라와 함께 2011년, ‘둠스탁스(DOOMSTARKS)’란 팀을 결성하고 “Victory Laps”를 발표하기도 했다.
진 그레이(Jean Grae) = 진 그레이(Jean Grey)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슈퍼맨 프로젝트 때문에 빠진 마블 코믹스의 돌연변이 군단 [엑스맨, X-Men] 영화 3편이 그나마 매력적이었던 것은 진 그레이가 드디어 피닉스(Phoenix)로서 위엄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2002년 가장 중요한 여성 래퍼의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 [Attack of the Attacking things]로 데뷔한 남아프리카 태생의 래퍼 진 그레이가 자신의 랩퍼 이름을 진 그레이로 정한 것도 강인한 여성으로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마지막 스펠링 하나만 바꾸었다). 발표가 늦어지고 있지만, 지금 그녀의 홈페이지를 확인해보면 그녀가 얼마나 코믹스의 팬인지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차기작 [Cake or Death]의 홍보물을 마치 [킬 빌, Kill Bill]에 삽입되었던 코믹스 컷을 보는 듯 꾸며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 역시 코믹스 캐릭터로 그려놨다. 랩을 정말 잘하는 진 그레이 누님, 센스도 만점.
빅 펀(Big Pun) / 퍼니셔(프랭크캐슬)
2000년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사망한 래퍼 빅 펀의 랩퍼 이름은 마블 코믹스의 안티 히어로인 퍼니셔에서 따왔다. 퍼니셔는 스파이더맨을 암살하려는 캐릭터로 1974년 처음 등장했지만,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복수심 가득한 어두운 기운의 범죄자형이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이지만, 뉴욕 사랑이 대단했던 라임 괴물 빅펀에게 뉴욕을 배경으로 경찰과 갱단 사이에서 홀로 자신의 길을 가는 퍼니셔는 매력 만점이었을 것이다. 물론, 날렵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퍼니셔에게서 빅 펀을 떠올리긴 쉽지 않지만. 그래서 ‘빅’을 이름 앞에 붙였음이 분명하다. 꾸준히 영화화되는데, 빅 펀이 사망 전 봤을 영화는 돌프 룬드그렌이 주연한 1989년 작이었을 테니 안타깝다. 물론, 2004년과 2008년에 각각 제작된 영화도 이 멋진 캐릭터를 살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스눕 독(Snoop Dogg), 레이디 오브 레이지 (The Lady of Rage), RBX = 배트맨, 로빈, 고든
스눕은 박쥐가 아니라 개를 표방하고 있지만, 배트맨을 향한 애정은 이미 이스트사이다즈(Tha Eastsidaz)의 “Got Beef” 비디오에서 이미 선보였다. 배트맨을 소환하는 조명을 패러디 한 ES조명을 보고 클럽을 구원하러 출동하는 그는 브루스 웨인을 살짝 떠올렸다. 스눕 독이 배트맨을 자신의 래퍼 자아로 활용하고 있진 않지만, 2002년 작 [Paid da cost to be da boss]에 수록된 “Batman & Robin”에서 그는 결국 일을 낸다. 디제이 프리모(DJ Premier)는 60년대의 오리지날 TV시리즈의 테마를 제대로 힙합으로 재탄생시킨 비트를 제공했고, 스눕과 레이디 오브 레이지는 TV 시리즈의 배트맨과 로빈을 완벽하게 이해한 가사와 연기력을 선보였다. 특히, 레이디 오브 레이지의 박수가 절로 나오는 코믹스 캐릭터와 각종 코드를 등장시키는 디테일한 라임, 그리고 커미셔너 고든(Commissioner Gorden)이 아닌 커미셔너 X(Commissioner X)로 분한 RBX의 중량감, 스눕 독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단순히 코믹스 캐릭터를 가져오려는 시도를 넘어 코믹스 팬과 힙합 팬을 모두 만족시키는 밀도 있는 트랙을 탄생시켰다. 곧 개봉하는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러 가는 길에 한번 들어보면 그 맛이 남다를 듯하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남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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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아니면 이런 글 보기 힘들죠 ㅋㅋ
요새는 참신하게? 기사를 올리시는것같네요 ㅎㅎ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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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밝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