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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대중에게 음악이란 몇 백 원짜리 콘텐츠, 상업적인 유흥 아이콘이다. 대중음악이 매스 미디어의 뻥튀기 없이 자체적 힘과 대중의 지지만으로 문화를 이루고, 스스로 가치를 높여갈 수 있는 시대는 예전에 지났다. 메이저 상업 음악계는 매스 미디어와 결탁으로 부흥기를 누렸었기 때문에 그 안의 힘에 귀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매스 미디어와 자본의 움직임에 의해 메이저 음악계의 대략적인 트렌드가 주도된다.그래서 그 대안으로 여겨져 온 (인디와 언더그라운드를 포함한) 장르 씬의 존재 이유와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 중 힙합이란 장르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 포지션이 살짝 유별나다고 얘기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티스트들과 마니아층의 주체적인 역할이 중요한 장르라는 점에서 인디, 혹은 언더그라운드 씬이 건강하느냐 아니냐가 그 음악적 가치의 질적 농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 현실을 생각해보자. 냉정하게 말해서 국내 힙합 씬은 주체적인 움직임만으로 장르 씬으로서 바운더리를 확고히 하기는 여전히 부족한, 늘 '가능성'인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단순히 수요가 적으니 공급이 적어진다는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우리의 장르 씬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체되어’ 있다. 혹자들은 단순히 흐름이 많이 변했다거나 대세가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순전히 자생적인 장르적 움직임에 의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한, 그 흐름의 변화가 장르 씬에 문화적 힘을 보태는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는가?
‘쇼미더머니’ 해프닝을 비롯하여 외부에서 힙합 뮤지션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느 정도 까발려졌다. ‘돈 못 버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내지는 ‘메이저로 진출할 기회가 없어서 언더에 있는 뮤지션’.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아직도 이렇게 불평한다. 외부에서 힙합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일반 매스 미디어들이나 메이저 음악종사자들은 존중을 표할 만큼 힙합에 관심 있지 않다. 그들이 관심 있어 할 힙합은 돈이 되는 힙합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딱 거기까지의 힙합 밖에 염두에 두지 않는 건 어쩜 당연한 것이다. 막연히 ‘존중’을 외치고, ‘힙합의 대중화’를 꾀하자는 소리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본에 얽힌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까지 힙합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선 진정 힙합이 대중적인 위치를 점해야 하는 것 외에 답이 없는 걸까?
내 생각에 그건 힙합 씬을 위한 해결책이 아니다. 설령, 오래 전부터 메이저로 나간 이들이 방패 삼아 펼치는 방식으로 ‘힙합의 대중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저 대중음악계에서 또 하나의 돈이 되는 시장이 되어주는 것 외에 긍정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돈이 되는’이라는 전제를 적용시켜 얻은 한 순간의 대중적 흐름이 씬의 발전에 토대가 되어줄 것이라는 건 어린 아이 같은 이상이다. 잠깐의 빛은 내리쬘지 모르지만,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다른 상업음악들과 똑같은 상품거리로 전락하는 것은 그야말로 씬에 대한 곡해된 시선들을 더욱 강하게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가요 내수시장 자체가 좁은데, 지속적인 서포트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므로 우린 이 땅에서 힙합이 인정받고 오래 살아남으려면 대중성을 확보하자고 외치기 이전에, 먼저 힙합이 문화로서 힘을 보여준 적이 있느냐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현재의 힙합 씬이 가장 치열한 과제로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문화적인 살을 찌울 것인가와 고유의 멋을 살릴 것인가다. 인정 받기 위해 훼손시키지 않으려면, 자체의 멋을 살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다른 상업 장르와 구별되는 인디, 언더그라운드 씬을 이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흔한 성형미인이 될 것인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살릴 것인지…. 뻔한 대답 아닌가? 단순히 음악 콘텐츠를 많이 팔기 위해 존재하는 씬이라면, 그곳은 남들이 바라보는 대로 메이저에 진출하지 못한 이들이 모여있는 곳이 맞다. 힙합 씬이 독립된 씬을 가지고 구별되는 정체성을 가지려면, 그 자체로 문화여야하기 때문이다. 막말로 음원 수익 조금 얻어보려고 ‘멋’ 다 버리고 상업음악 따라하기를 해봐야 당장은 몰라도 쭉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운 건 오십보백보다.
힙합이 음악 콘텐츠로서 가치뿐만 아니라, 문화로서 힘과 멋까지 갖추고 있다면 인정해달라 하지 않아도, 관심을 가져 달라 애쓰지 않아도, 많은 이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음악 콘텐츠로서 가치는 지금도 충분하다. 문화적인 정체성이 없는 게 관건인 것이다. 좋은 음악을 내놓는 뮤지션들은 많은데, 진짜 힙합 아티스트라는 느낌이 드는 이는 별로 없는 느낌이다. 번지르르한 소프트웨어가 아주 많아도 하드웨어가 망가지면 다 무용지물인데 말이다.
얼마 전 제이-지(Jay-Z)가 동성결혼 안건에 찬성 의견을 표한 기사를 보며, 난 국내 힙합 씬이 오버랩됐다. 단지 그 발언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시선을 의식했다면, 하지 못했을 얘기였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하지 못했던 화두를 꺼내었다는 의미에서 그날 제이-지의 발언은 진정으로 힙합적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많은 이가 힙합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문화를 부르짖지만, 그걸 행동으로 보여준 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오늘날 씬에 힙합이 먹고 사는 문제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 시대의 정신을 담는 문화라는 것을 반증하는 발언을 하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되냐는 이야기다. 물론, 쉽게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씬은 존속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뮤지션이나 마니아들이 먼저 이 장르를 단순한 상품으로 전락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힙합 정신이나 힙합을 문화로 만드는 건 말로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작 필요할 때 몸 사리는 힙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유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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