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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떡밥, 샘플링을 말한다: About Sampling
강일권 작성 | 2014-01-27 04:46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00 | 스크랩스크랩 | 59,779 View



글: 강일권



들어가기 전에

 

혹시라도 '샘플링도 모르는 것들이 무조건 표절'이라고 외치는 것에 분노하여 그저 마음의 위로를 얻고 함께 분노하며 조소를 날리는 글을 기대했다면,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시라 권하고 싶다. 이건 애써 현실을 방어하며 힙합팬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글도 아니고, '샘플링은 예술, 하지만 지킬 건 지키자.' 같은 뻔하고 영양가 없는 주장을 담은 글은 더더욱 아니다. 난 좀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한다. 그런 주장을 되풀이할 시기는 한참 지났기 때문이다.

 

*참고: 원래 엄밀한 의미에서 비트메이커와 프로듀서는 구분하는 게 맞고, 이 글에서 얘기하는 대상은 주로 비트메이커이지만, 오늘날에는 용어에 대한 구분이 매우 희미해졌기에 혼용하여 사용함을 밝힌다. 

 




"이 게임은 아주 오래 전 비즈 마키(Biz Markie)가 길버트 오 설리반(Gilbert O’Sullivan)의 곡을 샘플링한 걸 들추어냈을 때부터 엉망이 됐어. 설리반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어떠한 랩퍼에 의해서든 자신의 음악이 샘플링되는 걸 원치 않았거든. 그때부터 샘플링과 관련한 도미노 효과가 시작된 거야. 이걸 말해주고 싶어. 오늘날 힙합 씬을 보면, 유명한 곡들을 사용하는 녀석들이 더러 있더군. 마치 거물 아티스트인양 그들의 음악을 샘플링하지. 근데 그렇게 하면 문제만 더 크게 만드는 거라는 걸 알아야 해. ? 난 언제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선호해왔어. 사람들이 모를만한 거 말이야."

 

전설적인 프로듀서 피트 락(Pete Rock) 2011‘Vlad TV’와 인터뷰에서 했던 이 짧은 대답 속에는 오늘날 샘플링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과 샘플링에 대한 옹호, 그리고 샘플링 작법에 기반한 프로듀서가 어떤 시각을 견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현답이 동시에 들어가있다.

 

그가 서두에서 언급한 비즈 마키와 길버트 오 설리반 사이의 법적공방은 샘플링 클리어런스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항상 회자하는 유명한 사건이다. 비즈 마키는 1991년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I Need a Haircut]의 수록곡 "Alone Again"에서 설리반의 "Alone Again (Naturally)"라는 곡을 허가 없이 샘플링했는데, 이를 원하지 않았던 설리반은 비즈 마키 측(당시 배급을 맡은 곳은 워너였다.)을 고소했고, 법정은 설리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 판결은 창작자와 음반 레이블 관계자들에게 샘플 클리어에 대한 의무감을 강조하며, 한창 상업적으로 성장해가던 힙합 산업계의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바꾸어버렸다. 피트 락은 이 사건을 통해 샘플링 작법의 예술성 이면에 도사린 윤리적, 법적 문제점을 상기시키고, 잘 알려진 곡들을 대놓고 무단으로 샘플링하는 이들을 지적하며,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힙합에서 샘플링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어디까지나 예술성을 담보한다는 가정아래) 윤리적, 법적 잣대를 피해갈 수 있는 묘책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를 막론하고 샘플링 관련 논란은 힙합 씬의 해묵은 떡밥이자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참 어이없게도) 아직 표절에 관한 법적 제도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인지라 크게 대두된 적은 없지만, 그 초점과 공방의 수준은 다를지언정 국내에서도 샘플링 문제는 꾸준히 야기되어왔다. 그리고 이번 빈지노의 "Dali, Van, Picasso" 무단 샘플링 사건은 강력한 불덩어리가 되어 전례 없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수없이 자행되어 왔음에도 음악팬들의 무관심과 언론 플레이로 교묘하게 빠져나간 선배, 혹은 동료 뮤지션들의 경우를 생각하면, 빈지노 측은 재수없게 걸렸다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샘플링에 대한 담론은 한국힙합 씬에서 꼭 한 번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었다. 아니, 한국힙합도 이제 15년이 훌쩍 뛰어넘는 역사를 자랑한다는 걸 고려하면, 늦어도 너무 늦은 셈이다.

 

솔직히 이제껏 샘플링에 대한 외부의 무지와 공격에 대응하는 힙합 뮤지션과 관계자들의 태도는 매우 문제가 많았다. 표절 의혹이 터질 때마다 메이저 레이블들이 해대는 '모르쇠' 신공을 펼치는가 하면, 남이 그러면 매몰차게 비판해야 할 위치에서 도리어 '샘플링으로 방어막 치기'를 시전하니 이렇게 웃기고 슬픈 상황도 없다. 그걸 옹호한답시고 힙합팬이나 동료 창작자들이 내뱉는 드립이나 주장도 대부분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를 남발하고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는 상태에서 감정적 수사와 비유만 날려대니 이런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 힙합에 대해 잘 모르고 무조건 '표절'을 언급하는 대중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정작 샘플링에 대해 어렴풋한 지식과 1차원적인 생각만으로 편을 드는 힙합팬, 창작자들이 수두룩한 것 또한 현실이다. 이건 대중 VS 힙합팬으로 유치하게 편을 나누고 대립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 지식을 쌓고 이해하는 과정의 문제다. 그리고 이는 양쪽 모두에게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이것부터 알고 넘어가자.

 



샘플링이란 무엇인가?

 

'기존 녹음물에서 일부를 빌려와 새로운 녹음물에 사용하는 것'

 

힙합팬들이라면, 일단 샘플링이 기존에 녹음되고 발표된 음악의 일부분을 차용해서 새로운 음악에 사용하는 것을 일컫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빌려온 소리를 데이터로 바꾸고 그 데이터에 따라 다시 소리로 복원하는 과정인 샘플링은 가장 널리 알려진 아카이(Akai)사의 MPC 샘플러 같은 전용 장비나 PC 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루어지곤 한다. 그리고 많은 이가 속칭 '통샘플'이라 부르는 원곡의 4마디 이상을 그대로 가져와서 루핑시키는 방식부터 원곡의 일부를 잘게 쪼갠 다음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통해 구현된다. 또한, 원곡의 분위기와 질감을 고스란히 가져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곡의 빠르기와 음의 높이를 마음대로 조절하거나 사운드 자체를 변형시키는 경우가 있다. 한 곡을 만들기 위한 샘플링의 대상은 원곡의 주 멜로디 라인(멜로디를 이루는 악기 및 사운드 소스), 드럼 파트(스네어 드럼, 베이스 드럼, 하이햇), 보컬 아카펠라 등등, 모든 부분을 포함하는데, 이처럼 단 한 곡만 가지고도 어느 부분을 차용할 것인가와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에 따라 새로운 곡을 얼마든지 파생시킬 수 있으며, 그 대상을 여러 곡으로 늘이게 되면,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의 형태가 거의 무한하다는 게 샘플링 작법의 가장 큰 미학이다.

 

그런데 이 샘플링을 인정하는 범위는 생각보다 광대하다. 일반적으로는 해당 곡의 인스트루멘탈, 보컬, 리듬 파트 중 일부를 따오는 것만 샘플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샘플링의 영역은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새의 지저귐, 바람 소리, 파도 소리 등등,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여 곡에 사용한다면, 이것도 샘플링 작법이 사용된 경우라는 얘기다. 다만, 이러한 소리에는 저작권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샘플링 작법의 시작은 어떠했을까?

 

, 그전에 일반 대중은 물론, 힙합팬마저도 배경지식이나 개념이 부족한 탓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소모적 논쟁 하나와 헷갈려 하는 사항 한 가지부터 짚고 넘어가보자.

 

-통샘플링은 구리다?

 

우리나라 힙합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장 소모적인 논쟁 중 하나가 '통샘플링'과 관련된 것들이다(사실 통샘플링이라는 표현 자체에 어폐가 있지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사용하도록 하겠다). 샘플링된 곡들의 기술적, 질적 측면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순 있겠지만, 무조건 통샘플링을 비하하는 모습은 한국 힙합팬들이 얼마나 샘플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지를 드러내준다. 일단 통샘플링으로 완성한 곡이 그렇지 않은 곡보다 비교적 한 수 아래에 놓일 여지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꼭 구리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통샘플링을 하는 건 원곡의 아우라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유명한 곡들이 주된 디깅 대상이 되며, 메이저 레이블에서 나오는 상업적 히트를 노린 싱글에 주로 사용되어 왔다. 세계 최고의 랩퍼 중 한 명이었던 더 노토리어스 비아이쥐(The Notorious B.I.G)의 곡 중에도 이러한 통샘플링 트랙이 꽤 있었는데, 1집의 "Juicy" 2집의 "Mo Money Mo Problems" 같은 곡이 그 대표적인 예다. 흥미로운 건 이 곡들이 힙합 명곡으로 일컬어진다는 점이다. 곡을 찾아낸 후, 그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따오는 디제이이자 프로듀서로서 행위를 인정하고 그 위에 얹힌 랩과 프로덕션이 어우러지며 연출하는 최종적인 완성 단계를 논해야 한다는 걸 인지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경우, 다른 장르에서 보편적인 리메이크의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데, 기존 곡을 그대로 부르거나 재현하는 게 아닌 랩/힙합 특유의 장르적 특성으로 재탄생한다는 걸 고려하면, 오히려 통샘플링은 리메이크보다 한 수 위의 창작법이라 할만하다. 단지 일반적인 리메이크와 달리 원곡의 세계관을 많이 거세하기 때문에 리메이크보다는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여기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이어질 클리어런스 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상업적 노림수와 상관없이 통샘플링을 하는 경우는 해당 프로듀서가 그 곡에 대한 애정을 온전히 표출하기 위해서일 때가 많다. 무엇보다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곡에서 루프를 따오는 건 발굴과 소개라는 차원에서 가치도 크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양의 음악을 접할 인물이 (진정한 의미의) 디제이(DJ)라고 했을 때 끊임없이 음악을 찾아내고, 그렇게 찾은 옛 음악과 현대 음악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건 그들에게 일종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강조하겠지만, 힙합이 탄생하고 꽃피우는 데 디제이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과 디제이와 비트메이커 사이의 벽은 종종 쉽게 허물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통샘플링의 진짜 맹점은 통샘플링이라 불리는 작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으론 그 작법을 쓰는 프로듀서의 성향이나 이력(, 통샘플링을 하는 빈도), 윤리적으론 허락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있다. 가령 발표하는 곡의 대부분을 통샘플링으로, 그것도 어느 정도 알려진 곡들을 위주로 사용하여 완성하는 프로듀서가 있다고 치자. 이럴 땐 아무리 힙합음악의 역사와 특성을 고려하더라도 그 창작자의 재능이나 장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의심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전지전능한 프로듀서로 통하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도 일전에 213"Another Summer"라는 곡을 만들 때 저 유명한 에디 켄드릭스(Eddie Kendricks) "Intimate Friends"라는 곡을 통으로 빌려온 적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통샘플링이라 비난하지 않는 건 칸예가 평소 다양한 샘플링 기술을 발휘하는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적어도 힙합팬이라면, 통샘플링으로 완성된 곡을 논할 때 이것이 '통샘플링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1차원적인 논의에서 한 발 물러나와 '그 곡을 만든 프로듀서의 행보' '그 곡에 쓰인 원곡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더불어 통샘플링 곡은 원곡이 잘 알려졌든 그렇지 않든 간에 원곡의 영향력이나 기여도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클리어런스와 크레딧 표기는 필수여야 하겠다.

 

-무단 샘플링은 표절이다?

 

이건 정말이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일단 청자 입장에선, 더 정확하게는 크레딧 표기상 해당 뮤지션의 순수 창작곡으로 알고 들었던 입장에선 원곡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낄 배신감이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단 샘플링 = 표절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이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는데,

 

첫째, 무단 샘플링과 표절은 각각 그걸 행하는 창작자의 의도가 엄연히 다르다.

 

표절은 작정하고 남의 것을 베껴서 자신의 것인양 둔갑시키는 게 목적이지만, 샘플링은 힙합음악을 완성하는 하나의 작법으로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표절엔 악의적인 변형이 가해진다. 사실을 숨기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베끼는 대상이 된 곡의 일부를 비틀기 마련이니까. 국내 가요계에 널린 표절 의혹 곡들이 증명하듯이 4마디의 멜로디 라인 중 한 마디 정도를 살짝 다르게 바꾸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샘플링에선 원곡의 변형을 불허한다. 그 일부를 삽입하거나 다른 샘플과 조합하여 전혀 다른 곡으로 만들어내긴 할지언정, 따온 원곡의 부분 자체를 악의적으로 바꾸진 않는다. 이는 해당 곡이 샘플링 작법으로 완성한 곡임을 일부러 숨기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많은 한국 힙합 곡에서도 들을 수 있는 (피치를 조절하거나 원본 그대로 인용된) 옛 소울, 펑크 넘버의 보컬 샘플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특히, 무단 샘플링 논쟁의 대부분은 해당 아티스트 측이 비용 문제 탓에 정식 클리어 절차를 밟지 못했거나 애초에 미처 체크하지 못하여 발생한다. 표절의 경우처럼 원저작자의 음악을 교묘하게 베껴서 자기 것인양 하려는 의도가 아니란 소리다부디 곡해는 하지 마시라. 그렇다고 해서 무단 샘플링은 아무 문제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어쨌든 다른 사람의 저작물 일부를 허락 없이 따다 썼다는 결과적 측면에서는 모두 같다고 생각해버릴 수 있겠으나 둘 다 창작자의 양심, , 어떤 의도로 접근했느냐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는 걸 고려하면, 무단 샘플링과 표절은 다른 영역에서 논해야 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국외에서도 표절과 무단 샘플링은 법적으로 그 손해배상 규모에서는 비슷할지언정 엄연히 구분되어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무단 샘플링 = 표절이라는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는 다음 사항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샘플링의 범위는 매우 넓다.

 

대개 주 멜로디 라인이 비슷하여 의혹이 불거지는 표절은 누가 들어도 원곡을 베꼈다는 게 드러난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이 샘플링을 인정하는 범위와 대상이 되는 부분은 매우 넓고 다양하며, 원곡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전혀 알아차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원곡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하더라도 어느 부분이 샘플링되었는가에 따라 원곡이 영향을 끼친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표절에선 원곡의 영향력을 따지는 것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므로 단지 무단이라는 이유만으로 표절과 같다라고 얘기하는 건 샘플링 작법 자체를 매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혹자는 그렇다면, 무단으로 통샘플링된 곡만큼은 표절이나 다름 없는 것 아닌가 라고 주장할 지 모르지만, 여기에 대한 답은 첫째 항목에서 설명으로 대신해도 될 듯하다. 

 

, 그럼 이제 아까 들어가려던 샘플링의 시작을 이야기해보자 



 

힙합은 무단 샘플링에서 시작됐다!

 

중세 이전부터 있어온 음악 차용의 시대를 지나 단순한 차용과 차별화하는 디지털 샘플링 작법을 탄생시키고 발전시켜서 대중음악계로 끌어올린 건 힙합 선구자들이었고, 그들은 모두 비트메이커 이전에 디제이(DJ)였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힙합은 무단 샘플링에서 시작됐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만으로 섣부르게 샘플링에 대한 오해나 편견에 맞서고자 해선 곤란하다. 우린 이 역사적인 사실의 배경부터 잘 살펴봐야 한다. 샘플링은 디제잉 문화 속에서 그 싹을 틔웠다. 일전에 힙합 만화인 'This Is Hip Hop: DJ 쿨 허크와 힙합음악의 탄생'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힙합에서 샘플링 작법의 초석을 다진 건 디제이 쿨 허크(Kool Herc)의 플레이다. 1973년 뉴욕 브롱스에 있는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열린 하우스 파티에서 쿨 허크는 두 턴테이블과 믹서를 가지고 알앤비와 펑크(Funk) 음악을 틀면서 곡의 간주(Break) 부분을 무한 반복시키는 회심의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허크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밤바타(Africa Bambaataa), 그랜드마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 등의 유명 디제이들도 두 대의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그들이 좋아하는 구간을 반복시키는 플레이를 하곤 했다. 이후, 이들은 퍼커션과 베이스로 리듬 파트를 형성하고 그 위에 여러 곡의 간주를 버무리며, 더욱 다채롭고 견고한 디제잉을 선보였고, 힙합에서 룹(Loop)의 개념을 처음으로 각인시킨 허크의 기술은 오늘날 샘플링 프로덕션의 초석이 된 것이다. 간혹, 샘플링의 시작을 가난한 현실 속에서 흑인들이 음악을 만들고 랩을 하기 위해 찾은 방편으로 얘기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건 매우 왜곡된 정보다. 샘플링의 역사는 어디까지나 파티에서 사람들의 흥을 돋구기 위한 방법을 찾던 디제이의 플레이로부터 시작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흥미롭고도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당시 쿨 허크를 비롯한 여러 디제이들(힙합음악은 디제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잊지 마시라!)이 했던 행동이다. 그들은 자신이 플레이한 레코드 판에 붙은 라벨을 찢어버리거나 글자를 지워버리기 일쑤였는데, 바로 다른 디제이가 어떤 곡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사람들을 더욱 열광하게 만드는 플레이가 승패를 가르던 디제이들 간 배틀에서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이것이 일종의 멋이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건 '비용을 들여서 디깅(Diggin')한 레코드의 음악은 내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초기 힙합 씬을 일군 프로듀서들(거듭 강조하지만, 그들이 곧 디제이이기도 했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당시 프로듀서들에게 돈을 내고 레코드를 샀다는 건, 그 음악을 자기 마음대로 샘플링하여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힙합 역사상 가장 중요한 디제이이자 프로듀서 중 한 명인 말리 말(Marley Marl)이 지난 2013 9월경 미 공영방송 NPR과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뒷받침해준다.

 

"난 정말 많은 레코드를 소장하고 있었어. 그것들로부터 킥, 스네어를 뽑아내고, 내가 원하는 형식대로 만들곤 했지."



 

이것은 힙합 음악 태동기의 멋진 일화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뮤지션은 물론, 음악계조차도 샘플링이라는 생소한 작법 앞에서 저작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던 때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최초의 히트 랩 싱글인 슈거힐 갱(Sugarhill Gang) "Rapper's Delight"이 쉭(Chic)의 곡을 무단 샘플링하여 소송까지 갔던 일화만 보더라도 당시엔 샘플링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정식 레이블에서 제작된 이 싱글은 소울/펑크 그룹 쉭의 "Good Times"에서 베이스 파트를 무단으로 따왔는데, 우연히 클럽에서 "Rapper's Delight"의 존재를 알게 된 쉭의 나일 로저스(Nile Rogers)는 슈거힐 갱과 제작사에게 소송을 걸었고, 결국, 이들은 원곡의 저작권자로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림과 동시에 수익의 일부를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힙합 역사상 최초의 샘플링 저작권 논쟁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여기서 절대 간과해선 안 될 지점이 있다. 결과적으론 무단 도용이 됐지만, 어쨌든 그때에도 원곡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무시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음반숍에 가서 디깅한 LP 금액을 지불하는 행위 자체가 그들에겐 해당 곡의 사용료를 내는 것과 다름없었던 거다. 그러므로 '힙합은 무단 샘플링에서 시작됐다.'라는 말을 흑인들은 가난했기에 어쩔 수 없이 무단으로 가져다 썼다.’라며 표면적으로만 이해해선 안 된다.  

 

샘플 클리어런스 이슈가 대두된 건….

 

본격적으로 샘플 클리어런스에 대한 음악 산업계의 인식이 생겨나고, 법의 필요성이 대두된 건 89년 데 라 소울(De La Soul)과 더 터틀스(The Turtles) 사이의 마찰과 앞서 피트 락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언급한 91년 비즈 마키와 길버트 오 설리반 케이스를 거치면서다. 그리고 이렇게 샘플링과 저작권 관련하여 민감한 반응이 나오게 된 건 바로 힙합 음악이 돈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초기적 힙합 뮤지션들과 음반 관계자들은 "힙합이 돈을 벌기 전까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저 옛날 백인 뮤지션들과 관계자들이 흑인 뮤지션들이 발표한 좋은 곡을 마음대로 가져다가 장르만 바꾼 편곡으로 자기 곡인양 버젓이 내놓던 걸 생각하면, 땅을 치고 억울해할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바뀌기 마련인 것을. 게다가 클리어런스에 대한 이슈는 무턱대고 힙합 편을 들 수만도 없는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클리어런스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샘플 클리어런스(Sample Clearance): 샘플링을 위해 원저작자, 또는 단체로부터 원곡의 사용을 승인 받는 행위'

 

샘플 클리어런스를 하기 위해선 원곡 소스를 그대로 사용할 때와 새롭게 연주하여 사용할 때가 조금씩 다른데, 이건 지난 2010, 본 사이트에 게재했던 외부 필자의 칼럼 중 일부 내용으로 대신해도 될 듯하다.

 

"샘플링에는 크게 원곡의 음원(마스터 레코딩)을 사용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 유명한 디디(Diddy)'I’ll Be Missing You'는 폴리스(Police)'Every Breathe You Take'의 후렴구 멜로디를 차용하여 새로이 녹음한 케이스로, 이러한 경우 폴리스의 음원을 소유한 레코드 회사에는 따로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음악출판사, 즉 퍼블리싱 회사를 통해 작사자와 작곡자(이하 원저작자)의 허락을 받으면 사용할 수 있습니다(물론, 원저작자가 퍼블리싱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면, 원저작자 본인으로부터 직접 허락을 받으면 됩니다.). 또 다른 케이스는 샤인(Shyne) 'Quasi O.G.'와 같은 경우로, 도입부에 밥 말리(Bob Marley)가 녹음한 'No More Trouble'의 원곡이 그대로 쓰인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퍼블리싱 회사를 통해 원저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함은 물론, 밥 말리의 녹음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한 레코드 회사로부터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힙합팬들에게 익히 알려진 같은 샘플을 쓴 두 명곡, 다 브랫(Da Brat) "Funkdafied"와 노토리어스 비아이쥐의 "Big Poppa"의 예를 더해보겠다. 두 곡은 모두 아이즐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 "Between The Sheets"를 샘플링했는데, "Funkdafied"는 원곡의 멜로디 라인을 가져오되 그 멜로디를 구성했던 악기 소스를 완전히 새롭게 바꿔서 완성한 경우며, "Big Poppa"는 원곡의 인스트루멘탈 일부분을 그대로 따온 경우다. 그렇기에 전자는 "I’ll be Missing You"의 예가, 후자는 "Quasi O.G."의 예가 적용된다고 할 수 있겠다.

 

자 이 과정에서 많은 이가 몰랐을 사항이 바로 클리어런스는 대부분 사전 허가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곡을 만들기 전에 샘플링할 곡의 사용 허가를 받는 게 당연시 되어왔으나 이것은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절차였다. 다름 아닌 '동일성유지권'이란 항목 때문이다. 이는 저작인격권의 하나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그 저작자의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이는 그 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에 대한 본질적인 변경을 할 수 없다.'라는 게 요지다. 쉽게 말해서 원곡자가 애초에 곡을 만들 때 원했던 방향이나 분위기, 세계관 등을 편곡이나 개사를 통해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간혹 미국의 랩퍼들이 인터뷰에서 샘플 클리어런스를 하지 못한 탓에 누락한 곡이 있다고 말하는 걸 본 적 있을 것이다. 미국에선 일단 샘플링하여 곡을 만들어놓은 다음, 원저작자 측에게 클리어런스를 요청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2, 루페 피애스코(Lupe Fiasco)의 싱글 "Around My Way (Freedom Ain't Free)"를 들은 피트 락이 분노를 표했던 일화가 좋은 예일 듯하다. 당시 루페는 피트 락 앤 씨엘 스무쓰(Pete Rock & CL Smooth)의 명곡 "T.R.O.Y. (They Reminisce Over You)"를 샘플링하여 화제가 되었다. 피트 락의 곡은 헤비 디 앤 더 보이즈(Heavy D & The Boyz)의 사망한 멤버 트러블 티-로이(Trouble T-Roy)를 추모하는 곡이었는데, 루페는 비트의 아우라는 그대로 가져오되 가사적으론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아냈다. 그리고 이것이 피트 락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다. 

 

"루페에 대한 디스리스펙(disrespect)도 아니고, 난 그를 매우 좋아해. 하지만 T.R.O.Y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해. 이건 엄격한 훼손이야. 그 비트는 정말 침통함과 고통 속에서 나온 거였어... 누구도 건드려선 안 되는 거라고! (중략) 누가 하든 (그 곡을 가사적으로) 재창조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야." –Pete Rock의 당시 트윗

 

엄밀히 따져서 레이블과 정식 클리어런스 절차를 밟은 루페의 행동이 법적으로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도의적으론 침해한 셈이었다. 피트 락이 작업에 참여한다는 전제아래 샘플링을 허락했지만, 아무런 상의 없이 (그것도 샘플링이라기보다는 원곡의 리메이크 수준으로) 곡이 발표되었고, 원곡자인 피트 락은 주제가 바뀐 것, , "T.R.O.Y. (They Reminisce Over You)"의 본질적인 부분이 변질되었다고 느낀 것이다.

 

그놈의 법! ! !

 

아마 지금쯤 되면, ‘그놈의 법! ! ! 원칙! 원칙! 원칙! 거 되게 까다롭게 구네. 예술을 법의 잣대로만 평가하려 하지마!!!’라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꽤 있을 거다. 그런데 과연, 맹목적인 힙합 애호가들이나 일부 국내 뮤지션들이 주장하듯 샘플 클리어런스가 단지 창작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창작자들을 옭아매는 빌어먹을 장치에 불과할까? 더불어 이걸 단지 힙합의 전통적인 작법이었으니까라는 말 하나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건 매우 이기적이고 위험한 생각이다.

 

샘플링 작법이 쓰인 수많은 힙합 히트곡들이 청자의 마음을 앗을 수 있었던 건 비트와 랩 모두 잘 맞물려서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루핑되는 멜로디가 좋아서일 수도 있고, 리듬 파트(드럼)가 좋아서 일수도 있으며, 랩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해당 아티스트의 색이 뚜렷이 투영되는 랩은 논외로 치더라도 만약 주된 루핑, 혹은 리듬이 샘플링한 원곡에 많은 부분 빚을 지고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Bitch, Don't Kill My Vibe”를 즐겨 들은 이들 중 상당수가 매료됐던 그 나른한 기타 리프와 무드는 덴마크 그룹 붐 클랩 배칠러(Boom Clap Bachelors)“Tiden Flyver”라는 곡에서 그대로 차용해온 것이다. 당연히 “Bitch, Don't Kill My Vibe”는 여기에 서던 힙합 리듬이 부여되고, 켄드릭의 탁월한 랩이 얹히면서 원곡과는 다른 장르로 재탄생했지만, 이 곡이 완성되는데 “Tiden Flyver”의 존재가 중심에 있었음을 부정할 순 없다. 이런 경우 샘플링을 얼마나 잘했느냐와는 상관없이 응당 원곡자를 밝히고 대가를 지불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힙합에서 샘플링은 빌린다라는 개념이지 뺏는다라는 개념이 아니니까….

 

빌린다는 건 결국, 대상에게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의미고, 무료 대여가 있는가 하면, 유료 대여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법적으로 정해진 경우가 아니고선 빌려주는 사람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사항이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샘플링 클리어런스는 바로 이렇게 자연스러운 과정인 셈이다. 무엇보다 내 것만큼이나 남의 것 역시 소중한 법임에도 샘플링은 힙합의 전통적인 작법이라고!’라는 주장만으로 대중에게 조소를 날리고 모든 논란을 종식시키려 하는 일부 창작자들의 모습에선 무지의 공포가 엄습하기도 한다. 이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기본적인 소양과 인식 차원의 문제인데, 아무리 우리가 문화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라 하더라도 뮤지션/관계자는 물론, 장르팬이라 자처하는 이들마저도 법적, 윤리적 이슈에 너무 둔감하다는 건 곱씹어 볼 부분이다.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밴드의 드러머이자 세계 최고의 펑키 드러머로 유명한 클라이드 스터블필드(Clyde Stubblefield)의 예는 '힙합의 전통적 작법'이라는 미명 아래 창작자가 또 다른 창작자의 작품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 경종을 울릴만하다. 제임스 브라운의 명곡 "Funky Drummer (Part 1 & 2)"에서 스터블필드가 만들고 연주한 전설적인 드럼 브레이크는 이후, 힙합 뮤지션은 물론, 여러 장르 뮤지션의 곡에 수없이 샘플링되었고,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지만, 그는 정당한 대가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만약 그가 샘플링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았다면, 수십억 대 부자가 되었을 거다. 그만큼 "Funky Drummer”의 드럼 브레이크는 많은 힙합 명곡이 탄생하는데 실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와 관련하여 다큐 [Copyright Criminals]에 나오는 스터블필드의 인터뷰는 상당한 울림을 주는데, 그가 정작 중요시 생각한 건 돈보다도 그 리듬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이름과 작은 존경의 표시였다. 여전히 작은 재즈 클럽에서 열정의 연주를 멈추지 않는 스터블필드는 영상 속에서 매우 인자한 표정과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들은 절 넘버원 샘플러 드러머라고 불러요. 누군가 와서 제 드럼 브레이크를 쓰고 싶다고 하면 (아무 대가 없이) 그러라고 한 적도 있죠. 돈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랩 아티스트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이나 잘 지내냐는 등 안부 인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저에게 감사 인사를 한 건 멜리사 에서리지(Melissa Etheridge) 뿐이었죠."

 

클리어런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저작물이 있다던데…?

 

주로 60년대 이후의 소울, 펑크 넘버들을 샘플링하는 힙합 씬에선 아직 크게 와 닿지 않겠지만, 저작권자 사후 70년이 된 저작물은 허락 없이 마음대로 이용 가능하다(원래는 사후 50년이었으나 2013 7 1일부터 변경됐다.). 저작권법에 의한 보호기간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 한 곡에 대한 원저작자가 여러 명일 때는 최후의 1인이 사망한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이런 저작물을 모아놓은 국내 사이트(‘공유마당’)도 있다. 그리고 일명 샘플 CD’라 불리는 매체에 수록된 소스들도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요즘은 나오지 않지만, 90년대만 하더라도 몇몇 레이블에선 소속 힙합 뮤지션들의 히트곡 소스들을 모아서 CD로 발매하곤 했는데, CD를 구입하는 비용이 곧 클리어 비용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문 무성한 클리어런스 비용은 도대체 얼마?

 

오래 전, 그러니까 한국힙합 초기적부터 이어져온 괴담이 하나 있다. 샘플 클리어를 하려면 1곡에 수천 만원이 든다는…. 그런데 PC통신 시절이던 그땐 워낙 제한적인 정보만 취할 수 있었던 데다가 한국대중음악계에 퍼블리싱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 정말로 클리어를 하려면 1~3천만 원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선 확인할 수 없다. 실제로 일전에 리드머나 외부 컨텐츠 제휴 업무 차 90년대부터 활동했던 몇몇 뮤지션들과 인터뷰를 하며 그들이 행한 무단 샘플링’, ‘표절 시비에관해 물어본 결과, 돌아온 해명은 대부분 그땐 회사들도 퍼블리싱이 뭔지 몰랐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여전히 거론되는 천만 원 단위의 클리어 비용은 지극히 드문 경우에 근거를 둔, 절대 평균적이지 않은 와전된 금액이다. 게다가 정보를 종합해봤을 때 그 드문 경우라는 것마저도 대개 두 가지 이유일 확률이 크다. 원저작자가 작정하고 돈을 벌기 위해 부른 금액이거나 샘플링에 별 관심이 없어서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지르고 본 것이거나….

 

난 이 글을 쓰면서 국외 음원을 소유한 음악퍼블리싱사 관계자를 비롯한 샘플 클리어런스를 위해 퍼블리싱사와 접촉을 시도해봤던 레이블 관계자 몇 명으로부터 꽤 구체적인 비용과 현황을 들을 수 있었다(절대다수의 한국힙합 뮤지션들은 미국의 소울, 펑크에서 샘플링을 따온다.). 일단 클리어를 위한 금액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데, 평균적인 비용은 곡당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였다. 다만, 샘플링 허락을 요청한 뮤지션의 대중적 인지도를 고려하여 괜찮은 음원 수익이 기대될 때에는 최초 클리어 비용을 건너뛰고 추후 수익에서 나누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원저작자가 퍼블리싱 회사와 계약을 맺지 않아 직접 접촉했을 땐 음악적인 교감을 통해 아무런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클리어하기도 한다는데, 이건 원저작자와 친분이 특별하지 않은 이상 매우 드문 경우라고 보면 된다. 몇 년 전 이런 일화는 있었다. 모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 앨범을 준비하면서 양희은 씨의 아침 이슬중 한 소절을 샘플링하여 곡을 만든 후(내 기억에 그 소절은 두 번 정도 등장했다.), 허락을 받고자 원저작자인 김민기 씨와 접촉했다. 하지만 그는 샘플링되는 걸 원치 않았고, 결국, 해당 곡은 그 소절이 제거된 채 발표됐는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비용을 원한다는 얘기는 일체 없었다고 한다.

 

다시 평균 비용으로 돌아와보자. 사실 많은 힙합 곡이 샘플링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봤을 때 곡당 200만 원은 결코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힙합 트랙 한 곡이 만들어지는데 최소 2개 이상의 샘플이 쓰일 때도 있고, 이렇게 만든 곡들로 앨범을 꾸렸을 땐 샘플 클리어 비용만 천만 원 단위에 이르게 된다. 이 정도면, 메이저 레이블이어도 부담을 느낄만하니 인디나 언더 입장에선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성토가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단지 판이 크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무단 샘플링을 정당화할 순 없다. 더구나 현재 인디 노선을 걷는 힙합 뮤지션 중에는 샘플 클리어를 하기에 충분할만큼 수익을 올리고 있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한국힙합 시장의 거품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시선이 드리울 때마다 SNS나 인터뷰를 통해 한국힙합 씬이 얼마나 커지고 활발해졌는데! 비판하는 사람들은 헤이러(Hater)!’라고 외쳐대던 많은 창작자들이 샘플링 문제만 터지면, 금새 작은 시장과 언더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모순된 모습은 씁쓸함을 안긴다.  

 


그럼 클리어런스는 누가 하는가?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서 쏟아진 여러 반응들 중에는 샘플 클리어런스 절차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답은 간단하다. 만약 해당 곡과 앨범의 주체가 되는 창작자가 소속 레이블이 있다면, 레이블이, 아니라면, 창작자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국외의 경우, 메이저 레이블이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레이블이라면, 음반 사업과 관련한 법적,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담당 변호사, 혹은 부서가 있다. 간혹, 그럼에도 무단 샘플링 소송에 휘말릴 때가 있는데, 이는 해당 창작자와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클리어 과정에서 놓쳤기 때문이다. 꼭 메이저 레이블이 아니더라도 샘플링 관련 사항에 대한 인식이 잘 되어 있는 미 힙합 씬과 달리 국내에서 문제가 꼬이는 건 주로 샘플 클리어 이전에 곡을 만든 이가 샘플링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좀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이번 “Dali, Van, Picasso”를 예로 든다면, 일단 샘플 클리어를 해야 하는 법적인 의무와 책임은 빈지노의 소속사인 일리네어에게 있다. 그러나 일리네어에서 직접 피제이에게 쳇 베이커(Chet Baker)“Alone Together”를 샘플링해서 만들어줄 것을 요청한 게 아닌 이상, 이번 건의 모든 책임을 레이블 측에만 물을 순 없는 것이다.

 

결국, 돈이 없으면 샘플링을 하지 말란 말인가?

 

괜한 걱정일진 몰라도 지금까지 읽어 내려오면서 결국, 클리어 할 돈이 없으면 샘플링 하지 말란 얘기냐?’라며, 고깝게 생각할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서야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길 해야겠다.

 

클리어 할 비용이 없더라도 샘플링은 계속되어야 한다.’

 

, 원곡의 영향력이 지극히 미비하거나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판단할만한 결과물을 만들 때에 한해서다. 실제 장르팬이라면, 이름을 알만한 미국의 인디 힙합 뮤지션들 역시 때때로 클리어 이슈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희귀 음원에서 샘플을 따오고 변형을 주곤 한다. 그리고 이건 그저 법적, 윤리적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힙합 뮤지션으로서 자존심과 함께 재창조라는 샘플링의 본질적인 가치를 과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샘플링은 단순히 기존 작품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처음엔 도둑질이라며 업신여겨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순수 창작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지고, 작법의 발전을 통해 많은 장르에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또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주력 장르를 막론하고 국외의 많은 평론가와 전문가들은 샘플링의 역사, 미학 등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연구를 바탕으로 많은 글을 쏟아냈으며, 뮤지션 대부분 역시 샘플링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샘플링을 논할 때면 항상 제일 먼저, 그리고 중요하게 언급되는 게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작품들이다. 샘플링 궁극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들의 많은 곡들은 과연, 우리가 샘플 클리어런스의 의무라는 걸 어느 선까지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찰을 요구한다

 

마크 카츠(Mark Katz)가 쓴 책 [소리를 잡아라]에서도 샘플링의 미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로 거론된 퍼블릭 에너미의 곡들에는 평균 5곡 이상의 샘플이 사용되었으며, 무려 10곡 넘게 사용된 경우도 많다. 그룹의 리더 척 디(Chuck D)를 포함한 5인조 프로덕션 팀 밤 스쿼드(The Bomb Squad)는 이렇게 많은 샘플을 치밀하고 정교하게 조합하여 강력한 그루브의 비트를 창조해냈는데, 중요한 건 대부분 곡에서 크레딧을 보더라도 어떤 곡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마크 카츠는 저서에서 “Fight The Power”를 예로 들며, 4초 길이의 부분에 적어도 10여개의 각기 다른 샘플이 1초 이하로 사용되었다고 설명했다. 극도로 짧게 딴 보컬, 퍼커션, 악기 파트 소스들이 하나로 이어져서 짧은 루프를 형성하는 것만으로도 놀랍지만, 다시 그 위에 다른 루프를 겹쳐서 완성했다는 사실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정도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운 샘플링 작법은 “Fight The Power”뿐만 아니라 그들의 다른 여러 곡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샘플링이 녹음 기술이나 장비의 발전 덕에 가능해진 일종의 꼼수가 아닌, 소리를 콜라주(collage)로 엮은 혁신적인 예술 작법임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샘플링은 기술적 측면이나 윤리적 측면에서만 재단할 수 없는 변형의 예술로서 가치가 상당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대충 남의 곡 일부를 따와서 드럼 입히면 되는 거식의 몰이해를 드러내는 국내의 타 장르 뮤지션, 관계자, 평론가들이 많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당장 샘플링의 미학을 장르 외 음악팬들이나 전문가들에게 이해시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엔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한국힙합 뮤지션들이 샘플링에 표절 가리개라는 오명을 씌우고 그 가치를 깎아내려 왔기 때문이다. 미 힙합 씬에서 샘플링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하나의 혁신적인 작곡법으로 인정받게 된 건 나 같은 평론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샘플링을 통해 훌륭한 곡들을 만든 힙합 뮤지션들에 의해서였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이를 위해선 창작자들부터 역사와 기술, 그리고 관련 이슈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의 말처럼 이건 자신의 작품에 얼마나 진정성을 부여하느냐하는 태도와 교양의 문제니까 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난 이런 생각을 했다. ‘한국힙합 씬에서 샘플링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 진정한 가치를 전파하는 첫 걸음을 내딛기에 지금이야말로 적기가 아닐까?’ 하는…. 물론, 가야 할 길은 매우 멀겠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고생 많은 (그리고 앞으로도 더 고생해야 할) 샘플링을 향한 사죄와 이 땅에서 클리어런스 의무만으로 재단할 수 없을만큼 샘플링을 통해 탁월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몇 안 되는 프로듀서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그리고 이 글이 미력하나마 샘플링을 이해하는 데 괜찮은 자료가 되길 바라며….


참고 자료: 리드머 칼럼 '샘플링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 마크 카츠 [소리를 잡아라, Capturing Sound: How Technology Has Changed Music], 댄 포러(Dan Forrer) 감독 다큐 [Sample This], 벤자민 프렌즌(Benjamin Franzen) 감독 다큐 [Copyright Criminals]. 그 외 관련 문의사항에 친절하고 자세하게 답해준 퍼블리싱사와 레이블 관계자, 창작자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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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 등록
  • oddrap
    1. oddrap (2014-02-02 06:22:39 / 39.7.52.**)

      추천 2 | 비추 0

    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샘플링을 힙합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이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좀 더 일반적인 이해에서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좀 가 풀어보자면 샘플링은 사실상 소리를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글을 쓸 때 인용을 하듯이 말이죠.
      이런 부분까지 짚었다면 좀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글 남깁니다 ㅎ
  • 할로윈1031
    1. 할로윈1031 (2014-01-29 16:02:05 / 175.202.125.**)

      추천 3 | 비추 0

    2. 정말 골아프고 답답한 얘기들을 쭉 정리시켜주고 중요성까지 확인시켜주시니 정말 감사한 글이지만,

      생각할수록 답답하게만 느껴지네요. 안그래도 부실한 매니아층에서 샘플링이 왜곡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니까..
      또 그걸 뮤지션들이 속시원히 해결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구요. 본문에 쓰셨듯이 꼭 법에 맞춰서 창작활동을 이어가는것도 말이 안되잖아요.
  • 우울하지않아
    1. 우울하지않아 (2014-01-28 09:44:55 / 115.21.229.**)

      추천 1 | 비추 1

    2. 트위터,페이스북 이외에 타 사이트 펌 가능한가요?
  • 방랑자
    1. 방랑자 (2014-01-28 00:30:50 / 182.219.224.*)

      추천 2 | 비추 0

    2.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
  • sodgh
    1. sodgh (2014-01-28 00:29:22 / 110.9.1.**)

      추천 9 | 비추 1

    2. 답답할 정도로 쉽게 답이 안 나오는 문제인 거 같습니다. 샘플링에 대해 잘 아는 창작자들도 클리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할 방안을 찾지 못한 채로 이해만을 요구하고 있으니 잘 모르는 대중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런 칼럼을 통해 자리잡히는 올바른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샘플을 통으로 썼든, 변형했든 그 매력에 푹 빠진지 오래 되어 샘플링 작법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게 참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360사운드의 헤드룸 락커스를 기다리고 있는 요즘 이런 일이 터지니 더 그렇네요. 본문에 나와있는대로 이젠 통샘플링으로 원곡의 바이브를 고스란히 재현했다면 클리어를, 다수의 샘플을 퍼즐처럼 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다면 클리어할 필요 자체가 없겠죠. 특정 음을 모방한 수준에 불과한데다, 예시처럼 10개 이상의 샘플을 활용할 경우 그걸 다 클리어한다는 건 세계적인 대스타가 아니고서야 해외 뮤지션들도 어려울테니까요.

      주저리주저리 길어졌는데 이런 양질의 칼럼 덕분에 리드머를 늘 찾게 되네요. 정말 잘 봤고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통샘플링은 클리어할 여건이 마땅치 않은 한국에선 점점 줄어들 추세로 흐를 거 같아 안타깝지만, 이런 칼럼이 도둑질 취급받는 샘플링의 매력과 대안, 그리고 올바른 인식에 큰 밑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l'equip
    1. l'equip (2014-01-27 18:09:50 / 219.241.144.**)

      추천 9 | 비추 0

    2. 커뮤니티는 죽었어도 이런 양질의 칼럼들 덕분에
      리드머는 여전히 멋진 사이트입니다.
      잘 봤습니다.
  • 랩퍼엔
    1. 랩퍼엔 (2014-01-27 14:59:51 / 211.56.190.***)

      추천 4 | 비추 0

    2. 역시 강집장님 글은 쉽고 명쾌합니다. 좋은 글 꼭꼭 씹어 잘 읽었습니다^^
  • 0r트모스
    1. 0r트모스 (2014-01-27 10:43:09 / 1.241.26.**)

      추천 5 | 비추 0

    2. 여태 봤던 샘플링 관한 글 중에 최곱니다. 거의 모든것을 정리해주신거 같네요

      정독해서 읽었습니다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 똘킴
    1. 똘킴 (2014-01-27 10:39:17 / 14.138.114.***)

      추천 8 | 비추 0

    2. 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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