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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음악을 향한 또 하나의 시선, Blue-eyed Soul 2부
이용석 작성 | 2010-07-15 16:01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6 | 스크랩스크랩 | 23,641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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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머의 새로운 객원 필자 이용석 님의 R&B 기획기사, 그 첫 번째 주제는 바로 블루-아이드 소울의 역사입니다. 총 3부작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Hall & Oates

블루 아이드 소울 역사상 가장 성공한 그룹으로 평가 받는 홀엔오츠(Hall & Oates)가 등장한 것은 70년대 초반이었다. 이 둘은 모두 알엔비/소울의 고장인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하였는데 템플 대학(Temple University) 시절 각기 다른 그룹에 속하여 활동 하던 중 아델피 볼룸(Adelphi Ballroom)에서 열린 대학 그룹들의 잼 세션에서 서로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의 첫 만남은 바로 그룹의 결성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모두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연령대도 비슷했으며, 음악적 가치관도 같았기에 자연스럽게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이 중 데릴 홀(Daryl Hall)은 록 그룹 걸리버(Gulliver)로 일렉트라 레이블(Elektra Records)에서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이 앨범은 참담한 실패를 기록했으며, 이후, 그는 고향 필라델피아로 돌아가 스타일리스틱스(The Stylistics)와 델포닉스(The Delfonics)의 백업 보컬리스트로 활동하였다. 한편, 1968년 학교를 옮기면서 필라델피아를 떠났던 존 오츠는 1969년에 필라델피아로 돌아왔고 대릴 홀을 만나 듀오를 결성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들을 주목하고 있던 토미 모톨라(Tommy Mottola)가 매니저를 맡아 애틀랜틱 레코드(Atlantic Records)와 계약하고 1972년, 대망의 데뷔 앨범 [Whole Oates]를 발표하게 된다. 이후, 그들은 “Rich Girl”, “Sara Smile”, “I Can”t Go For That (No Can Do)” 같은 곡들을 히트시키며 빌보드 차트 1위를 6번이나 차지했고, 발표한 싱글 모두 40위권 안에 진입하는 대단한 기록을 남기면서 최고의 인기 그룹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들은 90년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활동을 중단했다가 2003년에 재결합해 [Do It For Love]를 발매하였고, 현재는 각자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

Michael McDonald

홀엔오츠 이후, 한동안 주목할만한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세인트 루이스 출신인 마이클 맥도날드(Michael McDonald)는 달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밴드에서 활동하며 뮤지션으로서 꿈을 키우던 그는 20대 초반에 스틸리 댄(Steely Dan)이라는 록 그룹에서 백업 보컬리스트로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게 되자 두비 브라더스(Doobie Brothers)라는 그룹에서 영입 제안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그룹은 78년에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서 [What A Fool Believes]라는 앨범과 곡으로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앨범상(Record Of The Year)’과 ‘노래상(Song Of The Year)’ 부문을 동시에 석권하게 되었고, 마이클은 이 상승세를 솔로 활동으로 이어나가기 위해 82년도부터 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첫 번째 앨범인 [If That”s What It Takes]는 골드를 기록 하는 등 괜찮은 시작을 보였으나 이후, 발매하는 앨범은 모두 형편 없는 성적을 보이며 그의 명성을 갉아먹었다. 그러나 2003년, 그의 음악 인생이 거의 황혼에 다다랐을 무렵, 모타운의 명곡들을 리메이크한 앨범 [Motown]을 발매하였는데, 의외로 이 앨범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된다. 이후, 발매한 리메이크 앨범 [Motown Two]도 골드를 기록하였으며, NBC의 시트콤 [30 Rock]이나 [아메리칸 아이돌]에 출연하는 등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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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o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 막 탄생하여 붐을 일으키던 80년대 후반에 디노(Dino)라는 뮤지션이 등장하였다. 그는 라스베가스에서 성장하였는데, 그의 아버지가 레스토랑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티미 유로(Timo Yuro)처럼 어린 나이 때부터 레스토랑에서 무대 경험을 쌓으며 뮤지션으로서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에서 라디오 DJ 직책을 맡아 지역 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는데 성공하였고, 이것을 발판 삼아 에스콰이어(Esquire)라는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곧 얼마 가지 않아 이 그룹에서 탈퇴한 디노는 89년도에 [24/7]이라는 뉴 잭 스윙 앨범을 발매하였고, 싱글 “I Like It”이 빌보드 차트 3위에 오르는 등 대단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두 장의 앨범을 더 발매하였으나 변화하는 음악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뮤지션이 아닌 프로듀서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그는 뉴 키즈 온 더 블럭(New Kids On The Block)의 멤버 조던 나잇(Jordan Knight)과 작업을 하기도 하였고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 사운드트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New Kids On The Block

사실, 디노가 초창기에 인기몰이가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그가 89년 여름에 어떤 투어의 오프닝 공연을 도맡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공연이 뉴 키즈 온 더 블럭의 여름 투어 공연 이였으며 이들의 출현은 이후 미국 음악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게 된다. 이 그룹은 프로듀서 마우리스 스타(Maurice Starr)에 의해 결성되었는데, 마우리스 스타는 뉴 에디션(New Edition)을 발굴하고 키운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그렇다. 바로 뉴 키즈 온 더 블럭은 뉴에디션의 백인 버전이었던 것이다! 첫 시작은 그리 좋지 못했다. 콜럼비아에서(Columbia) 86년에 발매된 첫 번째 앨범 [New Kids On The Block]은 그들의 프로듀서이자 매니저나 다름 없던 스타의 부단한 노력에도 대중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레이블을 설득하여 88년에 두 번째 앨범 [Hangin” Tough]을 발매한다. 첫 번째 앨범에서 버블껌 팝(Bubblegum Pop) 콘셉트가 완전히 실패하자 이번 앨범에서는 발라드 풍의 “Please Don”t Go”라는 곡을 첫 번째 싱글로 정하였는데, 이 곡 마저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이에 대응하여 콜럼비아사는 그룹을 방출하기로 결정하였으나 그 결정이 통보되기 불과 11시간 이전에 플로리다의 라디오에서 그들의 노래를 처음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여기 저기서 그들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덕에 콜럼비아사는 그룹을 방출하지 않았고 그들은 이 곳에서 4장의 앨범을 더 발매하게 되었다. 첫 싱글의 성공을 시작으로 뉴 키즈 온 더 블럭의 인기는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고, 90년대 초반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룹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인기는 얼마 가지 못하였고 립싱크 사건과 더불어 당시 막 유행하던 갱스터 랩과 얼터너티브 록으로 스타일 변화는 그들에게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그들의 상품가치가 떨어지자 마우리스 스타는 그들 곁을 떠났으며, 그룹의 쇠퇴를 직감한 조나단 나잇(Jonathan Knight)도 그룹을 탈퇴하게 된다. 그룹은 그렇게 해체되었으나 10년이 훨씬 흐른 지난 2008년에 재결합해 컴백 앨범을 발매하고 현재까지 투어 공연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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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street Boys & N’Sync

뉴 키즈 온 더 블럭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상업적인 목적아래 수많은 보이밴드(Boy Band)가 탄생 했는데, 그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성공했던 그룹이 바로 백스트릿 보이즈(Backstreet Boys)와 엔싱크(N’Sync)였다. 이 두 그룹은 모두 자이브(Jive Records) 소속이었으며, 로우 펄만(Lou Pearlman)이라는 기획자에 의해 결성된 그룹이기도 하다. ‘백스트릿 보이즈’라는 그룹명은 로우 펄만이 올랜도에 있는 벼룩 시장(Backstreet Flea Market)에서 착안해 지었다고 한다. 그들은 첫 출발을 유럽에서 하였고 독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싱글 “I Will Never Break Your Heart”를 50만장이나 팔아 치웠다. 유럽에서 성공에 고무된 자이브는 이들을 다시 미국으로 불러들여 2009년까지 약 7장의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1억장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이들은 활동 도중 엄청난 성공에 도취되어 마약, 멤버간 갈등, 로우 펄만과 자이브와 수익 분배 문제 등을 둘러 쌓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2000년대 초반 잠깐 활동을 중단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엔싱크 역시 초창기에는 백스트릿 보이즈와 마찬가지로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두 번째 앨범 [No Strings Attached]는 발매 1주일 만에 240만장이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현재 로빈 시크(Robin Thicke)와 함께 남성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의 대표격인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가 속해 있던 그룹이기도 한데, 그의 솔로 활동으로 인하여 그룹이 해체되었다. 90년대에는 보이즈 투 멘(Boyz II Men)을 위시한 흑인 남성중창단 만큼이나 정말 다양한 보이 밴드가 등장하고 사라진 시기였다. 그 중 몇 팀을 꼽자면, 모타운(Motown) 출신의 98 디그리즈(98 Degrees)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과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의 지원을 받은 노 어써리티(No Authority), 폴리도르(Polydor Records) 출신의 코드 레드(Code Red) 등이 있다.

Jon B, Robin Thicke & Justin Timberlake

존비(Jon B)의 집안은 음악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음대의 대학교수였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으며, 형제들은 모두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연주하며 자랐다. 그는 유년기 때부터 피아노를 연마해 나갔으며 할아버지가 레코드 가게를 운영한 덕에 그 곳에서 드럼과 베이스 같은 악기를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알앤비 뮤지션이 되고자 데모 테잎을 만들어 여러 군데에 뿌렸는데,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사람은 당시 베이비페이스(Kevon Edmonds)의 부인이자 얩-윰 레코드(Yab-Yum Records)의 사장으로 있었던 트레이시 에드몬즈(Tracey Edmonds)였다. 그녀는 남편에게 젊은 존비를 소개하였고 그의 보컬로서 면모보다 작곡가적인 면모에 더 감명받은 베이비페이스는 그에게 작곡자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존비는 데뷔하기 이전부터 애프터 7(After 7),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 마이클 잭슨, 컬러 미 배드(Color Me Badd)와 같은 대단한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하게 된다. 그러다가 95년에 영화 [Bad Boys]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베이비페이스와 듀엣 곡 “Someone To Love”가 큰 인기를 얻게 되고, 여세를 몰아 데뷔 앨범 [Bonafide]를 발매한다. 그리고 이 앨범은 당시 가장 잘나가던 베이비페이스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골드를 기록하게 된다. 2년 뒤인 97년에 발매한 [Cool Relax]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플래티넘(Platinum)을 기록했고, 존비는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화려한 한 때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세 번째 앨범인 [Pleasures U Like]도 골드를 기록하는 등 정상급 뮤지션이 되려는 찰나에 집이 무너지는 재난을 겪게 되는데, 이때 집 안에 있던 스튜디오가 파괴되면서 그가 여태껏 작곡한 음악까지 모두 사라졌으며, 같은 해에 이혼까지 하게 된다. 이후, 두 장의 앨범을 더 발매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이전과 같은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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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시크(Robin Thicke)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배우였는데, 그가 7살 때 이혼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음악을 접했는데, 친가 쪽은 브루스 스프링틴(Bruce Springteen)같은 컨트리 음악(Country Music)을 좋아하고 외가 쪽은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나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같은 알엔비/팝 음악을 좋아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며 독학으로 피아노를 깨우쳤다. 그도 존비처럼 뮤지션으로서 대중 앞에 앨범을 내놓기 이전에 한동안 작곡가로서 활동하였는데, 그 첫 시작은 그가 17살 무렵 작곡한 “Sexual Attention”이었다. 이 곡은 마이클 잭슨의 조카들로 구성된 그룹인 3T에게 전해졌으며, 보컬로서 처음 재능을 보인 것은 99년, 뉴 키즈 온 더 블럭의 조던 나잇(Jordan Knight)의 솔로 데뷔 앨범에 참여하면서부터다(신기한 일이다. 일단, 그가 NKOTB의 멤버이고 앞에 말했던 것처럼 디노가 그의 앨범에 참여하였으며, 로빈 시크까지 참여하였으니 정말 희한한 우연이 아닐 수 없다.). 이후, 로빈은 마야(Mya),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브랜디(Brandy) 등의 뮤지션과 작업하며 업계에서 상당한 명성을 쌓게 되고 2002년도에 자신의 첫 번째 앨범인 [Cherry Blue Skies]을 발표하게 된다. 그러나 이 앨범은 약간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게 된다. 이듬해에 다시 앨범명만 바꾸어 [Beautiful World]라는 타이틀로 재도전을 해보았으나 결과는 역시 똑같았다. 하지만, 로빈 시크의 재능을 눈여겨본 퍼렐 윌리암스(Pharrell Williams)가 자신의 레이블인 스타트랙(Star Trak)으로 그를 영입하면서 로빈의 이력은 바뀌게 된다. 2005년에 첫 번째 앨범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올프로듀싱(All Producing)한 두 번째 앨범 [The Evolution Of Robin Thicke]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플래티넘을 기록하였다. 이후, 그는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엔싱크를 탈퇴한 이후, 2002년에 [Justified]를 발매하고 “Rock Your Body”나 “Like I Love You”같은 곡을 히트시키며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를 쌓게 된다. 또한, 2007년에 발매한 [Futuresex/LoveSounds]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 팀발랜드(Timbaland)와 데인자(Danja)가 올프로듀싱한 이 앨범의 사운드적 특징은 아직까지 유행으로 자리 잡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와이즈(The Y’s)라는 3인조 프로듀싱 팀을 결성하여 작곡가로서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으며 텐맨 레코드(Tennman Records)라는 독립적인 레이블도 설립하여 에스미 덴터스(Esmee Denters) 같은 신인을 발굴하고 데뷔시키기도 하였다.

차세대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

캐나다의 매니토바주에 위치한 위니펙(Winnipeg, Manitoba) 출신인 레미 쉔드(Remy Shand)는 모타운 클래식들과 멤피스 소울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재해석한 데뷔 앨범 [The Way I Feel]을 2002년에 발매하며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레미 쉔드 역시 로빈 시크의 부모님처럼 소울 음악을 좋아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남들보다 어린 나이부터 마빈 게이(Marvin Gaye), 알 그린(Al Green), 허비 행콕(Herbie Hancock) 등의 음악을 접하였다고 한다. 이런 음악과 함께 성장한 레미 쉔드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 이른 시기에 내적으로 상당히 성숙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부모님의 권유로 자퇴를 한 뒤 미국・캐나다의 검정고시 시험인 GED(General Equivalency Diploma)로 학업을 이어나갔다.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부모님의 지원 아래 10대 시절부터 여러 실험적인 밴드에서 실력을 갈고 닦던 중, 2001년에 모타운과 계약을 맺게 되고 이듬해에 데뷔 앨범을 발매하였다. 하지만, 첫 앨범 발매 이후, 부인 마이코 왓슨(Maiko Watson)과 이혼, 어머니의 사망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며 무려 8년 동안이나 두 번째 앨범을 발매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레미 쉔드가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필라델피아 출신의 에이모스 리(Amos Lee)라는 걸출한 신인이 등장하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에이모스 리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한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도중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뮤지션의 꿈을 성취하고자 과감히 사표를 내고 음악에 전념하게 된다. 그렇게 2005년에 발매된 EP 앨범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노라 존스의 콘서트 오프닝 게스트로 서게 되고, 이후, 스타덤에 올라 지금까지 세 장의 앨범을 발매하며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또한, 작년에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사랑을 받으며 등장한 다이앤 버치(Diane Birch)는 안식교라는 매우 엄격한 기독교 분파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유년기를 남아프리카나 짐바브웨 등을 돌아다니며 장래에 자신의 음악적 토양이 될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아버지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성향 탓에 10대에 고국 미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클래식과 오페라, 찬송가 말고는 그 어떠한 음악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국에서 다이앤은 그녀가 앞으로 하게 될 새로운 음악을 접하게 되고 이에 푹 빠지게 되어 2009년, 그녀의 성장 환경을 짐작하게 해주는 제목의 앨범인 [Bible Belt]를 발매하였다.

그리고 알짜배기 힙합/알엔비/소울 신인 뮤지션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레이블 스톤 쓰로우(Stone Throws) 출신인 메이어 호쏜(Mayer Hawthrone)도 2009년에 [A Strange Agreement]라는 60~70년대 올드 소울을 표방한 데뷔 앨범을 발매하며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악기 연주에서부터 최종 믹싱까지 앨범 하나를 완전히 홀로 작업하는 원맨밴드(One Man Band) 형식으로 앨범을 완성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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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의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

이외에도 수 많은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이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데이빗 포스터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별다른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 조던 힐(Jordan Hill)을 꼽을 수 있겠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하였는데, 대표적으로는 은근한 사랑받으며 5장의 앨범을 발매한 네오 소울 뮤지션 세븐(Seven)과 아직까지 CD베이비(CDBaby)같은 인디 쪽에서만 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탄탄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크리스 콜리(Chris Cauley), 제프 핸드릭(Jeff Hendrick), 마이클 웨이스트먼(Mycle Wastman) 등이 있다. 그리고 2010년에 데뷔 앨범을 발매한 그룹 더 라잇 나우(The Right Now)와 활동한지는 꽤 되었지만, 실력에 비해 별다른 인지도를 못 얻고 있는 밍코 피쉬트랩(Mingo Fishtrap), 올해 두 번째 앨범을 발매한 재즈/소울/훵크 그룹 엘리 페이퍼 보이 리드(Eli Paper Boy Reed) 등도 수준급의 결과물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기사작성 / 이용석(Contributor), 편집 / 리드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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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락
    1. 최영락 (2010-09-24 18:05:55 / 221.155.86.***)

      추천 0 | 비추 0

    2. Maroon 5 곡중에 소울적이고 훵키한곡들 많죠
  • janus
    1. janus (2010-07-31 04:16:19 / 118.42.40.**) 삭제

      추천 0 | 비추 0

    2. 아.. remy shand.. 우연히 듣고, 앨범까지 사서 지금까지 듣고 있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소식이 없으니..
  • CaseTankNovel
    1. CaseTankNovel (2010-07-20 08:42:32 / 118.33.62.***) 삭제

      추천 0 | 비추 0

    2. 이 기사 R&B팬으로서 참 좋네요. ^^
      다음 기사들도 기대하겠습니다.
  • 이용석
    1. 이용석 (2010-07-18 09:33:04 / 125.130.252.***) 삭제

      추천 0 | 비추 0

    2. 맞아요. 범위를 좀 더 넓게 잡는다면 에덤 리바인도 충분히 이 대열에 낄 수가 있죠. 사실 에덤 리바인이 속한 그룹이 팝/락 그룹인 마룬5인데, 위키에 마룬5를 검색해봐도 블루-아이드 소울이 장르란에 기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백인 락 그룹이 모두 다 블루-아이드 소울 축에 속한다는건 아니고, 마룬5의 음악에 아주 조금이라도 소울 음악의 흔적이 남아있기에 그렇게 부르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헌데 만약 그렇게 범위를 넓게 잡으면 너무나 써야할 분량이 많아지기에 미쳐 끼지 못했네요. 사실 에덤 리바인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ㅎㅎ
  • vale
    1. vale (2010-07-17 17:18:51 / 112.152.39.***)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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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담 레바인도 블루아이드소울에 어느정도 속하지 않나요?
      Heard'Em Say에서 팔세토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 klkl93
    1. klkl93 (2010-07-17 00:06:03 / 116.47.153.**) 삭제

      추천 0 | 비추 0

    2. remy shand 너무 아쉬워요.. the way i feel 진짜 명반인데 아직도 두번째 앨범이 안나오고 있으니... 재능이 너무나 아깝네요..
  • VJ
    1. VJ (2010-07-16 18:13:47 / 220.92.33.**) 삭제

      추천 0 | 비추 0

    2. remy shand 앨범은 정말 언제쯤 나올까요... 예전에 근황글도 올라왔었는데..
      2년전인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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