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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헤드폰 광고를 제작할 때의 일이다. 음악에 대한 리스펙트(Respect)라는 컨셉 도출부터 광고주 합의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막혔었다. 모두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모델이 출연을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대중적인 인기와 리스너들의 리스펙트까지 모두 갖춘 이 랩 스타는 모델로서는 얼마든지 오케이지만, 랩 하는 광고는 당분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전에 출연했던 몇몇 광고들이 랩을 너무 우스운 장치로만 사용해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며 몇 번이나 설득한 끝에 (심지어 필자가 몸담고 있는 리드머까지 언급해가며) 어렵사리 출연 승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 오래된 기억을 끌어내는 이유는 버벌진트가 “엘리트의 허세? 한국어 라임은 거기서 거기? 그 생각 맞서고 싶었지”라고 읽는 광고를 보며 떠오른 이번 달 기획 기사를 시작하기 위함이다. 랩스타들의 광고 흑역사를 찾아서.
버벌진트 - YES24
어느 날 후배 카피라이터에게 전화가 왔다. 대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배님 혹시 버벌진트라고 알아요?”
“어 랩 X나 잘해! 지금 우리나라 탑이지”
“이번에 우리 라디오 광고 버벌진트가 랩하기로 했어요.”
“야 이쪽 바닥에서는 유명하니까 배려 많이 해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라디오에서 듣게 된 광고는 이렇다.
사실 광고에서 멋진 랩을 들려주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다. 심지어 랩퍼들이 직접 가사를 쓸 수도 없다. 오히려 랩을 잘 모르는 (혹은 조금 아는) 카피라이터가 겨우겨우 라임만 맞춰놓은 정도의 가사를 녹음실에서 처음 보고 당황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하게 팍~ 끝! 인 경우가 많다. 라디오 광고의 경우는 더 심한 편인데 가사를 보여줄 수 없으니 랩을 쉽고 천천히 반복적인 라임으로 귀에 쏙쏙 박히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요즘 유행하는 ‘너와/ 나의/ 연결/ 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같은 스타일로 녹음을 한다면 50대 광고주 사장님께 ‘너는/ 나의/ 고민/ 꺼리/ 이건/ 너만/ 아는/ 소리’라는 꾸지람과 동시에 재녹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버벌진트 말고도 이렇게 라디오 광고용 랩을 하는 랩퍼들이 많다. 혹시 그들이 평소 그들답지 않은 랩을 하더라도 부디 실망하거나 욕하지 말기를.....타이거JK - 즐겨바라
우리나라에서 타이거JK만큼 광고를 많이 찍은 랩 스타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멋지게 잘 나온 광고만큼이나 지우고 싶은 광고도 많은 편이다. 그중에서 가장 아픈 광고는 아마 LTE 즐겨바라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안타까운 광고를 보면서 아마 다들 한 번쯤 이런 생각해봤을 것이다 “왜 출연했을까?” 사실 모델 계약을 체결할 때 콘티를 보고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광고주와 대략적인 내용만 구두로 듣고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촬영 며칠 전에 구체적인 콘티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심지어 현장에서 콘티가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후반작업 과정에서 여러 수정을 거치다 보면 모델은 물론, 대중, 심지어 제작자도 상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오곤 한다. 그러니 혹시 TV를 보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가 좀 이상한 모습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그를 욕하지 말기를... 결코 돈에 눈이 멀어서 자신을 팔아넘긴 것은 아니니...
워렌쥐(Warren G) - Affirm XL
우리나라 랩스타들의 아픈 과거를 들췄으니 이제 미국 본토 형님들의 아픈 과거도 들춰보자. 이 분야의 압도적인 1위는 아마도 워렌쥐의 ‘Affirm XL’ 시리즈일 것이다. 초저예산에 장수원을 능가하는 로봇 연기, 여기에 본인 얼굴에 먹칠하는 랩까지 정말 나쁜 광고의 3박자를 다 갖췄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요즘 할리우드에 유행하고 있는 트릴로지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부디 1,2,3편을 다 보시길. 소름 끼치게 뻔한 결말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스눕 독(Snoop Dogg) - Slings Hot Pockets최근 싸이와 뮤직 비디오에서도 아낌없이 망가져준 스눕 독은 광고에서도 망가지기를 서슴지 않는다. 대표작은 자신의 메가 히트곡 “Drop it like it`s hot”을 “Pocket Like It's Hot”으로 바꿔 부른 ‘Hot Pocket’ 광고다.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제작된 이 광고에서 스눕은 정색하고 랩을 한다. 퍼렐(Pharrell)대신 커다란 'hot pocket' 인형과 섹시 댄서들과 함께... 가끔씩 유머 사이트에 약 빨고 만든 광고라며 소개되기도 하는데, 주인공이 스눕이다보니 완전히 틀린 소개라고는 할 수 없다. 또 최근에 공개된 ‘You Got What I Eat’ 또한 병맛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미국에서도 광고 기획자가 약 빨고 아이디어 낸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핏불(Pit Bull) - Sheets Energy Strips
어떤 노래도 입만 뻥끗하면 히트곡으로 만들 수 있는 핏불이지만, 광고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문제의 광고는 2011년 최악의 캠페인으로 꼽히는 ‘Sheet Energy Strips’ 광고다. 르브론 제임스가 투자한 이 제품은 입에 붙이는 종이 형태의 에너지 식품이었다. 그래서 ‘sheet’이라고 제품명을 지었고 키카피(Keycopy)도 ‘i take a sheet'이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sheet‘은 ’shit‘과 발음이 비슷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이 캠페인은 산으로 가게 되었고 핏불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take a shit‘하는(큰 일 보는) 남자가 되었다.
릴 웨인(Lil Wayne) - Strapped Condoms
넬리(Nelly) - Buzz meets Nelly
시리얼과 랩 스타. 과연 어울리는 조합일까? 물론 마케팅 회의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수도 있다. “우리 브랜드를 아주 젊고 친근한 브랜드로 만들어봅시다!” “좋습니다! 그럼 랩 스타를 기용해서 우리도 스웩 한번 해봅시다!” 그런데 하필이면 모델이 넬리다. 기용시점은 넬리의 최전성기였던 2003년이 아닌 빅션, 위즈 칼리파, 애이샙 록키, 드레이크 같은 젊은 랩 스타들이 런웨이와 무대를 징악한 2013년이다. 과연 광고주는 넬리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리고 넬리는 허공에 대고 보이지 않는 꿀벌과 대화를 하고, 주무르는 연기를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랩스타들의 광고 흑역사를 살짝 들춰봤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결코 랩스타들이 원해서 ‘다시 보면 마음 아픈’ 광고의 주인공이 된 것이 아니다. 사실 광고주도, 광고 대행사도 그 누구도 그런 광고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한된 예산, 타이트한 일정, 그리고 중간 중간 생기는 많은 변수와 수정을 오가며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아끼는 스타들이 조금 아쉬운 모습으로 광고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고 응원해주길 바란다. 부디 열심히 음악 하는 우리나라의 랩퍼들이 아래 영상 속 같은 모습으로 더 자주 광고에 나오길 바라며....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우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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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서 대학교 광고했었는데
아마도 성시경이 라디오하던때 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