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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국내 랩/힙합 앨범 베스트 10
리드머 작성 | 2015-12-29 21:10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43 | 스크랩스크랩 | 67,155 View




리드머 필진이 1차 후보작 선정부터 최종 순위 선정까지 총 두 번의 투표와 회의를 통해 선정한 ‘2015 국내 랩/힙합 앨범 베스트 1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14 12 1일부터 2015 11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믹스테입(Mixtape)’이더라도 CD, 혹은 디지털로 정식 유통된 경우에는 후보군에 포함하였습니다.

 

※무료 공개 앨범들도 후보군에 포함하였습니다.

 

※일말의 오해를 줄이고자 올해 국내 앨범 부문 선정에 편집장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2015 /힙합 노래 베스트 10'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10. 일리닛 - Made in ‘98

 

Released: 2015-11-25

Label: 팩토리보이프로덕션

 

지난 2010, EP [The I]와 함께 데뷔한 랩퍼 일리닛(illinit)은 기본기를 갖추고 꾸준히 활동해왔지만, 좀처럼 인상적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원인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안정적이고 속도감 있게 뱉는다는 걸 제외하면, 특별히 귀를 잡아끌만한 개성이 부족했고, 가사적으로도 여느 평범한 랩퍼들과 별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레이블 스나이퍼 사운드 특유의 프로덕션과도 어우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가시권에서 멀어질 것만 같았던 일리닛은 이번에 발표한 새 앨범 [Made In `98]에서 이전과 전혀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안정감은 유지한 채 속도와 기교에 대한 강박에선 벗어나 비트 스타일에 맞춰 능숙하게 플로우를 구사하고, 진부한 스웩이나 어렴풋한 주제를 배제한 채 자기 이야기에 집중한 가사로 귀를 잡아끈다. 일장일단이 확실하긴 하나 [Made In ’98]은 커리어를 대표할만한 앨범이 없던 한 랩퍼의 개인적 소회와 아티스트로서 자아가 그럴듯하게 담긴 앨범이다. 무엇보다 오랜 경력의 그가 비로소 한 수준 올라온 긍정적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뻔하지 않은 신선함을 지닌다.


 

9. 박재범 – Worldwide

 

Released: 2015-11-05

Label: AOMG

 

아티스트로서 진화된 박재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정규작 [Evolution] 이후, 1년 만에 발표한 본작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힙합 앨범'을 표방하고 18곡이라는 방대한 양을 내세웠다. 더 놀라운 건 무려 27명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의 피처링 진이다. 중복된 아티스트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나는데, 흥미로운 건 이 많은 게스트들 사이에서도 박재범이 랩퍼로서 뒤쳐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주인공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그의 랩은 전작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전히 지나치게 단순하고 노골적이어서 그 이상의 쾌감을 주지 못하는 가사와 맥락없이 등장하여 휘발성으로 사용되는 한영혼용 문장이 발목을 잡지만, 한껏 톤을 올려 이를 조절하려 내뱉는 랩은 한결 매끄러워졌고, 스킬적인 면에서도 평균 이상의 기량을 선보였다. 더불어 트렌드를 따라 랩-싱잉 퍼포먼스를 시도한뻔하잖아(You Know)” 같은 트랙에서도 매력적인 보컬을 잘 살려냈다. 트랩, 랫칫, 붐뱁 등등, 힙합의 여러 서브 장르를 아우른 프로덕션도 준수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결과적으로 [Worldwide]는 장르 뮤지션으로서 박재범의 선언과도 같은 앨범이 되었다. 비록, 많은 피처링 진에게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할애했지만, 이제 랩과 힙합 음악으로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앨범 한 장을 만들 수 있는 역량의 아티스트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8. 수다쟁이 - 북가좌동 349-17

 

Released: 2015-02-16

Label: Self-released

 

'80년대 미 올드 스쿨 힙합에 영향받은 작법과 랩을 선보였던 그룹 수퍼랩핀 피제이(Superrappin' PJ)를 통해 인상적으로 등장한 수다쟁이는 결코 풍족해 보이지 않는 현실 안에서 반대로 현실과 한참은 동떨어진 기운을 전달하며 순수함과 흥겨움을 자아냈었다. 그가 데뷔 8년만에 여러 팀 활동을 거친 뒤 내놓은 이 첫 번째 솔로 앨범의 적극적인 감상을 위해선 반드시 수퍼랩핀 피제이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북가좌동 349-17]이 바로 수다쟁이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떠안은 시간의 무게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완전히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전부를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공식 작업물과 경력을 지닌 랩퍼의 첫 솔로 앨범이 자신의 길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모험에 가깝지만, 감정선의 구분이 확실한 구성미와 개별 곡의 완성도는 [북가좌동 946-17]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신예 디프라이(Deepfry)가 전체를 책임진 프로덕션이 이를 확실하게 지원한다. 소울풀하면서 재지한 사운드에 기반을 두고 곡의 성격에 맞춰 적절히 펑키함을 부여한 비트로 앨범의 콘셉트와 좋은 궁합을 보여주었다. 특정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고자 한 흔적도 엿보이지만, 그것이 앨범을 관통하는 랩퍼의 감정선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 점 역시 돋보인다. 비록, 랩의 완성미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나 수다쟁이는 자신의 데뷔 시점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그간의 내공이 잘 담긴 앨범으로 솔로 랩퍼로서 나름 성공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7. 천재노창 - My New Instagram : Mesurechiffon

 

Released: 2015-06-23

Label: Just Music Ent

 

저스트 뮤직(Just Music) 소속 천재노창의 이번 앨범엔 많은 부분 작위적으로 느껴지면서도 굉장히 세밀하게 갈라진 개인적 강박이 투영되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개인적인 공간이지만 온라인 전시공간이기도 한 인스타그램 속 구겨진 자아를 커버로 내세운 것은 작위적인 설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실제 그가 겪은 인스타그램 계정 삭제 해프닝의 파편들이 담겨 있는 것을 알아챈 이들은 '자기조롱' '자기애' 사이의 캐릭터를 즐기며 앨범을 시작할 수 있는 식이다. 천재노창이 구사하는 랩 가사와 퍼포먼스 역시 마찬가지다. 첫 트랙인 "해방자유"에서부터 앨범 대부분을 힙합 아티스트인 자신에게 걸린 기대를 비틀고 해체하면서 듣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유쾌하게 자극한다. 여기에 아슬아슬한 수위의 단어 선택을 통한 극 전개는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의 이른바병맛’, ‘혐오’, ‘저질코드에 상당 부분 빚을 지고 있다. 때문에 그의 작법이 이름에 걸맞게 오리지널리티를 담보한 가사적 성취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온라인에서 주로 논의되는 한국 힙합의 이슈들을 잘 짜인병맛스러움과 결합해 풀어냈다는 사실은 신선함이나 흥미로운 객기 정도로 다가오는 지점에서 멈추어 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칙적으로 뭉개버리는 플로우와 발성, 정색하고 들이미는 듯한 패러디 랩 등은 그의 가사에 의외의 생명력을 부여하기도 하는데, ‘천재라는 기믹을 즐겨보려는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할 법하다. 프로덕션도 준수하다. 그가 구사해오던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 소스들이 만들어내는 공간감과 견고한 구성미가 유지되는 가운데,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기운과 여유가 느껴진다. 천재노창은천재라는 기믹, 그리고 한국힙합을 향한 자신의 시선을 과잉과 작위성이 가득 담긴 앨범을 통해 잘 펼쳐냈다.


 

6. 블랭타임 - Color Unique

 

Released: 2015-09-21

Label: 리짓 군즈

 

방송에 나오지도 않고, 공격적인 홍보 활동을 하지 않아도 멤버의 면면과 결과물이 좋아 자연스레 눈에 띄는 이들이 종종 있다. 작년부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집단 리짓군즈(Legit Goons)도 대표적인 예다. 이미 랩퍼 뱃사공과 프로듀서 코드 쿤스트(Code Kunst) '싱글만 만연의 시대' 속에서 각각 정규 앨범을 통해 증명을 마쳤고, 크루 내의 또 다른 재능, 블랭타임(Blnk Time)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번 정규 데뷔작은 전반적인 무드와 보컬 스타일에서부터 기분 좋게 예상을 무너트린다. 이전부터 블랭타임은 자메이칸 랩과 한국의 타령 중간 즈음에 위치한 높은 파고의 플로우를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에도 이를 십분 활용할 거로 생각했지만, 그는 랩과 노래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무는 한편으로 느긋한 기운을 잔뜩 밀어 넣었다. 특히, 이러한 보컬 스타일이 오늘날 미국의 트랩 뮤직 랩퍼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90년대 웨스트코스트 힙합 아티스트들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후렴구에서 이런 부분이 도드라지는데, 프로덕션과 랩핑을 분리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하나의 소스로 활용한 듯한 운용은 평소 보여준 스타일에 최적화된 느낌이다. 더불어 블랭타임이 한량 캐릭터를 드러내지 않고 주로 예술가로서 면모를 조명하며 이야기를 풀어갔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에 따라 기존에 그가 위치한 서래마을, 성산, 홍대 등 현실상의 배경이 비교적 흐려지고, 각 곡의 주제 역시 블랭타임의 감정이 바탕 되어 꽤 추상적으로 흘러간다. 비록, 방점을 찍을만한 강렬한 한 방이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이른바 '(Chill)'한 기운을 자아내는데 중점을 둔 앨범의 컨셉트를 생각하면 일견 수긍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완성도가 탄탄한 건 물론, 국내외적으로 요즘 접하기 드문 무드를 간직한 힙합 앨범이 탄생했다.


 

5. 코드 쿤스트 - Crumple

 

Released: 2015-04-28

Label: 리짓 군즈

 

2014, 탄탄했던 정규 데뷔작 [Novel]을 통해 호평받은 힙합 프로듀서 코드쿤스트(Code Kunst)가 더욱 돋보인 건 음악적인 색깔과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확고해 보였기 때문이다. 장르의 매력을 담아내기보다는 온라인 음원 차트에 오르는 것과 미국 메인스트림에서 유행하는 특정 스타일의 어설픈 흉내내기에만 혈안 된 이들이 씬의 기득권을 차지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뚝심있게 자기 스타일로 밀어부쳤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이번 두 번째 앨범 [Crumple]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는데, 전작보다 월등히 많아진 피처링 진을 잘 조율하여 또 한 장의 만족스러운 프로듀서 앨범을 만들어냈다. 전반적으로 탁한 질감을 강조한 리듬파트 위에 다양한 신스를 활용해 몽롱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노이즈와 보컬 소스를 조합하는 특유의 작법이 유효한 가운데, 비트의 변주가 도드라지는 게 눈에 띈다. 언뜻 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많은 트랙 수와 참여 진 내에서도 스타일적으로 확실한 중심을 유지하며 호스트로서 존재감을 잃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프로듀서로서 코드 쿤스트의 역량은 여실히 드러난다. 객원들과 조합 또한 준수하다. 초청된 랩퍼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타이트한 랩핑을 빌어 각자 준비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전작의 “Organ”에서 코드 쿤스트와 가장 돋보이는 시너지를 보여줬던 넉살은 이번에도 두 곡(“에디슨”, “눈먼 자들의 도시”)을 통해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Crumple]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트랙 하나하나의 질감과 사운드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며, 악기와 사운드 소스의 조화 역시 잘 갈무리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완성도가 뒷받침되어, 반전 없이 일관된 무드 속에서 자칫 들 수 있는 지루함을 효과적으로 타개했다. 1년 전 [Novel]을 통해 한껏 끌어올려진 기대치에 충분히 부응할만한 작품이다. 이 뚝심 있는 프로듀서는 기존의 정체성을 고수하며 소포모어 징크스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4. JJK - 고결한 충돌

 

Released: 2015-01-23

Label: C9엔터테인먼트

 

정교하게 짜였지만, 마구 뱉어내는 듯한 랩 스타일로 독특한 기운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실제 행보가 가사의 견고함을 더하고 있다는 사실은 JJK의 가치를 끄집어내는 데 중요한 두 축이다. 이런 그가 자신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아내의 임신과 출산까지의 과정을 테마로 한 [고결한 충돌]은 이제껏 한국 힙합이 보여주지 못한 가사적 성취를 보여준다. 방법은 사실 아주 간단해 보인다. JJK는 씬이나 랩퍼 자신이 아닌 가족에게 무게중심을 완전히 돌린 [고결한 충돌]을 만들며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 가사의 견고함과 특유의 랩 스타일, 그리고 프로덕션까지 별다른 변화나 훼손을 꾀하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JJK는 언제나 주제 안에서 직접 겪은 치열함을 내세웠고, 이는 마치내가 겪은 건데 볼 것도 없다.’라고 말하는 듯한 현장감을 연출하는 데 제격이었다. 그리고 [고결한 충돌]에서 이런 접근법을 유지한 것은 굉장히 효과적이다. 순간적 속도감을 곁들여 박자를 타는 잘 짜인 라임이 더해진 즉흥적 기운의 퍼포먼스는 랩 자체를 듣는 재미를 충분히 주고, 뛰어난 전달력은 가사의 세심함을 돋보이게 한다. 결국, JJK의 경력 중 가장 안정적이면서 감각적인 랩을 [고결한 충돌]에서 만난다는 것은 기대치 못한 경험이다. 여기에 둔탁한 듯 몽환적으로 퍼지는 드럼 사이로 건반이 주도하는 멜로디가 서정적 분위기를 부여하는 프로덕션에서 최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코드 쿤스트(Code Kunst)를 비롯한 신인 프로듀서 진의 안정적인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본작에 가장 큰 특별함을 부여하는 것은 JJK가 경력 중 처음으로 곡 간의 연결을 통해 만들어 낸 서사의 힘이다. 많은 양의 가사를 담아낼 수 있는 랩으로 곡마다 세밀한 표현을 담아 그려낸 장면 장면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상적 이야기의 흐름에 실려 두꺼운 감정선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한 음악인이 결혼하고 아기의 탄생을 보며 성장하는 것을 목격하는 경험을 넘는 감상의 여백을 부여한다. 과감한 테마 선정과 이를 풀어낸 방식의 성취를 통해 [고결한 충돌]은 한국 힙합에서 굉장히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데 성공했다.


 

3. 와비사비룸 - 물질보다정신

 

Released: 2015-10-07

Label: Self-released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내비친 듯했던 데뷔작 이후, 8개월 만에 나온 그룹 와비사비룸의 [물질보다정신]은 이전의 약점을 완전히 보완한 것은 물론, 그들이 추구하는 고유한 매력은 극대화되고 놀랍도록 단단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모든 트랙의 프로덕션을 책임진 에이뤠는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멜로디와 미니멀하게 진행되는 루프를 절묘하게 배합하고, 예상하기 어려운 사운드를 변칙적으로 등장시키며 고유의 무드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낸다. 특히, 몽환적이면서 차분한 비트에선 늘어지지 않게 긴장감을 부여하고, 반대로 속도감을 지닌 트랙에선 긴장을 풀게 하는 능력은 그가 자신만의 색을 지닌 수준급 프로듀서임을 잘 보여준다. 이렇듯 나른하게 잘 짜인 무드에 제대로 올라탄 짱유와 제이플로우의 랩 역시 발군이다. 발음을 흐리고 호흡을 변칙적으로 조절하며 만들어내는 플로우는 작위적인 자극을 주지만, 뛰어난 전달력을 가지고 있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듯 치밀하게 짜인 라임 역시 적지 않은 순간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하려는 이들이 랩의 감흥을 반감시키면서까지 자주 사용하는 불필요한 영어 문장 하나 없이 그중 단연 돋보인다는 사실도 이들의 실력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더해서 짱유가 랩을 정신 없게 뱉어낸 뒤 제이플로우가 비슷한 듯 정돈된 톤으로 곡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진행은 개별 곡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줬다. 본작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가 자신만의 고유함을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향한 치열함을 잃지 않았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멋들어진 결과물이다. 매력적이고 수준 높은 프로덕션과 한순간도 놓치기 어려운 흡입력 있는 랩 퍼포먼스, 그리고 이 두 요소가 뚜렷한 고유색으로 덮인 힙합 앨범을 만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2. 딥플로우 양화

 

Released: 2015-04-13

Label: 비스메이져, 스톤쉽

 

딥플로우(Deelflow)는 전작 [Heavy Deep](2011)에서 '홍대'라는 공간으로 이야기의 범주를 축소하면서도 세밀한 캐릭터 묘사와 출중한 연기력, 그리고 과감한 구성을 통해 근래 보기 드물게 중량감 있는 앨범을 만들었었다. 그런 그의 경력을 면밀히 살피는 이가 아니라면, 전작 [Heavy Deep] [양화]의 감상 전이나 감상 이후라도 꼭 접할 필요가 있겠다. [양화]는 성공적인 속편의 법칙을 충실하고 영리하게 따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딥플로우는 이번 앨범에서 작품의 스케일을 충분히 확장하고 누구든 전작 [Heavy Deep]의 감상을 마치고 궁금해했을 주인공의 또 다른 이면을 그 확장의 폭에 적절하게 배치했다. 듣다 보면 딥플로우의 짧은 하루로도 읽을 수 있는 앨범의 구성미는 당연히 개별 트랙의 뛰어난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에 탁월한 수준이라 치켜세울 수 있다. 둔탁한 드럼이 주도하는 무게감 있는 루핑 위로 등장하는 다양한 사운드 소스의 재치있는 배치는 앨범 전체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각 곡의 가사가 추구하는 무드를 성공적으로 조성한다. 대부분 트랙에서 자연스럽게 상상력을 발휘해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러한 프로덕션은 앨범의 킬러 트랙들인불구경”, “작두”, “양화에서 그 진가가 드러난다. [양화]는 딥플로우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탁월한 전개와 마감의 구성미, 색이 뚜렷하면서 진부하지 않은 프로덕션, 그리고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뚜렷한 감정선의 랩으로 최근 몇 년간 발표된 한국 힙합 앨범 중 단연 돋보이는 완성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보편적인 일상과 한참은 떨어져 있는 하드코어 랩퍼의 일상을 담아내지만, 딥플로우가 던지는 감정선은 쉽게 보편성을 획득할 성격의 것들이기 때문에 많은 이가 큰 무리 없이 묵직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한국 힙합의 흐름을 살핀다면 반드시 경험해봐야 할 견고한 앨범을 통해 딥플로우는 다시금 스스로 실력과 경력 모두 한 단계 위로 올리는 성취를 이루어냈다. 진정한 베테랑이 만든 작품이라 치켜세울만하다.


 

1. 이센스 - The Anecdote

 

Released: 2015-08-27

Label: BANA

 

이센스(E Sens)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이자 옥중 앨범 [The Anecdote]는 많은 루머를 양산해내면서 발매 전부터 가장 중요한 한국 힙합 앨범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앨범은 쏟아진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켰다. 본작엔 이센스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랩 퍼포먼스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이를 돋보이게 함과 동시에 그 자체로 뛰어난 프로덕션이 그의 완전한 통제 아래 균형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적어도 그가 앨범을 기획하며 목적으로 삼았을 완성형에 근접했다는 걸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이센스는 앨범 전체적으로 순식간에 듣는 이를 집중시키는 특유의 즉흥적 기운을 극대화시켰다. 마치 비트가 흐르면 되는대로 지껄이는 듯한 그의 독보적인 랩 스타일이 강력한 감흥을 전달하는 이유는 그 뒤편으로 치밀하게 짜인 라이밍과 플로우 설계를 뛰어난 전달력 위에 잘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구절절 말해주는 듯한 랩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으로, 기술적 성취가 불러오는 감흥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전해지는 맛이 최고다. 텍스트로 확실히 각인되는 라임 배치나 '펀치라인' 강박감, 그리고 스타일이라는 명목아래 구차하고 수준 낮게 이루어지는 영어문장의 사용 없이도 기술적으로 훌륭하게 완성한 랩을 앨범 속에 가득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데뷔 전부터 현재까지 겪은 사건과 감정을 나열하는 다소 평이한 주제의 서사가 인상적인 감흥을 전달하는 것도 앞서 언급한 흡입력 강한 랩과 더불어 개별 곡의 명확한 역할과 배치가 이루어진 덕이다. 모든 곡을 만든 오비(Obi)의 비트도 탁월하다. 둔탁한 드럼과 절제된 룹의 운용이 돋보이는 붐뱁(Boom Bap) 사운드로 각 곡이 의도한 무드를 제대로 잡아준다. 이센스는 앨범 안에서 랩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실함을 여러 번 드러내지만, 단 한 곡도 뻔한 대중적 흥행코드를 흡수하지 않았다. 그저 앨범에서 그가 멋있다며 드러내는 취향과 머지않은 작품의 완성을 위해 준비한 여러 요소들이 치열하게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The Anecdote]가 마무리된 후 드러난 음악적 성취 자체가 이센스가 가사에서 흩뿌려놓은 여러 감흥의 마지막 한 조각이 되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비트, , 가사 모든 부분에서 이미 높아진 기대감을 충족시켜준 한국 힙합 걸작이다.

 

 

Honorable Mention

 

뱃사공 출항사

던말릭 & 마일드 비츠 탯줄

피타입 – Street Poetry

바스코 - Code Name : 211

피제이 - Walkin' Vo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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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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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nual
    1. Manual (2015-12-30 02:10:40 / 59.22.109.***)

      추천 3 | 비추 0

    2. 역시 Anecdote가! / 이견은 없지만 좋게 들었던 탓인지 탯줄과 Street Poetry가 아쉽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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