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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국외 랩/힙합 앨범 베스트 20
리드머 작성 | 2017-12-31 23:50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1 | 스크랩스크랩 | 42,915 View




리드머 필진이 1차 후보작 선정부터 최종 순위 선정까지 총 두 번의 투표와 회의를 통해 선정한 ‘2017 국외 랩/힙합 앨범 베스트 20’을 공개합니다. 아무쪼록 저희의 리스트가 한해를 정리하는 좋은 가이드가 되길 바랍니다.

 

2016 12 1일부터 2017 11 30일까지 발매된 앨범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20. Wiki - No Mountains In Manhattan

 

Released: 2017-08-25

Label: XL

 

위키(Wiki) 2011년 뉴욕에서 데뷔한 3인조 크루 랫킹(Ratking)의 한편을 담당한 랩퍼다. 당시 한창 세력을 일구는 중이던 같은 도시 출신의 프로에라(Pro Era)나 서부에서 활약하던 오드 퓨쳐(Odd Future)와 같은 세대인 셈이다. [No Mountains in Manhattan]은 위키가 무던히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한지 6년만에 발표한 첫 정규 솔로작이다.

 

본작은 위키의 태생지인 뉴욕을 배경으로, 도시에서의 전반적인 삶을 그린다. 단골 델리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거리에서 일행들과 마리화나를 태우고, 허드슨 강에서 일몰을 보거나 차이나타운에 들리는 모습 등, 제법 친숙한 뉴욕커들의 하루를 연출하는 초반부는 상당히 경쾌하면서 미니멀한 붐뱁 트랙들로 이루어졌다. 그에 반해 중반부에서는 도시의 압도적인 크기가 주는 딱딱한 인상과 그 안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점들, 그리고 뉴욕의 텁텁한 공기를 마시고 자란 그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또한, 조금씩 성취해나가고 있는 랩퍼로서 느끼는 부담감과 후회 등의 감정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이디어들은 사뭇 평범할지 몰라도 여기에 개연성을 더하고 서사를 엮어내는 방식은 탁월하다. 독특한 톤과 범상치 않은 플로우로 무장한 위키의 랩에는 평범함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마력과 리리시즘이 녹아 들어있다.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마땅한 작품이다.

 

 

19. G Perico - All Blue

 

Released: 2017-04-28

Label: So Way Out, LLC

 

서부의 신예 쥐 페리코(G Perico)는 와이쥐(YG)가 정립한래칫-쥐펑크노선을 철저히 따른다.와이쥐가 스스로 웨스트코스트 힙합 사운드와 갱스터 랩의 적자임을 내세웠듯이 쥐 페리코는 그러한 와이쥐의 과업을 함께 이루겠다는 듯 이번 앨범에서 작정하고 프로덕션을 구축하고 랩을 뱉었다.

 

퍼커션 파트를 비롯하여 리듬부의 부각을 최대한 배제한 뒤, 신스와 베이스를 위주로 운용하여 여백을 강조한 프로덕션은 맥 드레(Mac Dre)나 드루 다운(Dru Down) 등이 활약하던 ‘90년대 베이 에어리어(Bay Area) 힙합 씬의 맥을 잇는 듯도 하다. 가사적으로도 비교적 직관적인 갱스터리즘(Gangsterism: 갱과 관련한 일련의 행위들)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특히, 그의 옹골지고 타이트한 랩핑은 앨범을 정주행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다.

 

[All Blue] ‘90년대 서부 갱스터 랩과 쥐펑크를 추억하는 이들은 물론, 작금의 트렌디한 사운드를 즐기는 이들까지, 모두에게 호소할만한 작품이다. 페리코의 랩핑처럼 앨범이 아주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강점이다. 와이쥐가래칫-쥐펑크로 무장하고 개척한 새로운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혈통을 걸출한 신예, 쥐 페리코가 성공적으로 잇고 있다.

 

 

18. Future - HNDRXX

 

Released: 2017-10-20

Label: Freebandz, Epic

 

퓨쳐(Future)는 오늘날 가장 바쁜 힙합 스타 중 한 명이자 다작왕이다. 무엇보다 2000년대 들어 새롭게 정립된 랩-싱어란 개념의 최선봉에 기록될 만큼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하지만 한때 그를 둘러싼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대표적으로 지나친 오토튠(Auto-Tune)의 사용과 게스트 후광 효과 등이 있다. 퓨쳐는 이를 앨범과 믹스테입을 통해 말끔히 잠식해버렸다. 그의 앨범 단위 작업은 쉴새 없이 이어졌고, 2017년에도 정규 앨범만 두 장이 나왔다. [HNDRXX]는 그중 하나다.

 

먼저 발매된 [Future]가 둔중하고 음울한 무드의 트랩 위주였다면, [HNDRXX]는 멜로딕하고 랩-싱잉에 집중한 트랩과 알앤비 위주다. 퍼포먼스는 여전히 중독적이지만, 프로덕션적으로 다소 밋밋한 진행이 아쉬웠던 [Future]보다 귀를 잡아끄는 지점이 여럿 존재하는 [HNDRXX]의 완성도가 더욱 돋보인다. 이제 흔해진 랩-싱잉과 트랩의 바다 속에서 본능적이면서도 치밀하게 짠 멜로디로 작품의 밀도를 높이고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지금은 특정 스타일의 선구자라고 해서 쉽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신예의 도전을 받고, 카피캣의 위협에 직면한다. 스타일의 포화 상태가 되면, 그 분야를 일군 아티스트라 해도 잊히는 건 순식간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퓨쳐가 여전히 최상위층에 군림할 수 있는 건 그만큼 기본적인 퍼포먼스와 구축한 음악 세계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HNDRXX]는 앞으로도 퓨쳐의 위치가 쉬이 바뀌지 않으리란 걸 짐작하게 한다.

 


 

17. Kamau - Thekamau-Cassette: Urth Gold

 

Released: 2017-09-12

Label: Invisible Firm

 

탈힙합화가 덜 진행된 2000년대 초반의 안드레 쓰리싸운전드(Andre 3000)가 솔로 앨범을 냈다면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브루클린 출신의 랩퍼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카마우(Kamau)의 새 앨범엔 그만큼 예사롭지 않은 얼터너티브 블랙뮤직이 담겼다. 그의 음색과 보컬 스타일마저 안드레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안드레는 카마우에게 큰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다만, 점점 블랙홀을 향해 나아가던 안드레와 달리 카마우는 아직 블랙뮤직 안에 있다. 

 

대뜸 안드레 쓰리싸우전드의 이야기부터 꺼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마우가 카피캣이란 소린 아니다. 보통 다른 아티스트와의 비교는 부정적인 평가 요소로 거론되지만, 적어도 카마우에게 만큼은 그렇지 않다. 신선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변칙적인 진행이나 과감한 실험보다 멜로디와 어레인지 등, 세부적인 면에서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같은 장르를 섞어도 아티스트가 누구냐에 따라 밀도와 감흥이 달라진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특히, 카마우의 색깔 진한 랩과 노래는 들을수록 빨려 들어간다. 역동적이거나 내달리는 비트에 바짝 붙어서 카랑카랑하게 랩을 쏟아붓다가도 순식간에 노래를 통해 기가막힌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 -싱잉, 노래 사이를 넘나드는 아티스트는 꽤 있지만, 이처럼 자유분방하고 단 한 곡 안에서도 탁월한 유기적 관계를 맺는 경우는 드물다. 카마우가 작년에 발표한 EP [A Gorgeous Fortune]은 그해의 묻힌 수작 중 하나였다. 여전히 미미한 그의 인지도를 고려했을 때 [Thekamau-Cassette: Urth Gold] 역시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을 만난 건 행운이다.

 

 

16. Wiley - Godfather

 

Released: 2017-01-12

Label: Wiley

 

와일리(Wiley)는 그라임의 발전을 일구어낸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본작은 와일리의 열한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알려진 정규 작품이며, 최근 몇 년간 대중적인 시도를 감행하던 그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여태껏 구축한 장르적 성과를 충실히 구현한 결과물이다. 힙합과는 사뭇 다른 리듬과 거친 억양으로 구성된 자메이칸 스타일의 랩, 그리고 화려한 신스 운용은 [Godfather]라는 매우 근사하고도 정석적인 그라임 앨범을 탄생시켰다.

 

본작을 그라임의 정석이라 일컬어도 될 만큼 인상적인 이유는 일단 기본적으로 와일리의 퍼포먼스가 장르적 특성을 잘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와일리는 전자음 바탕의 짧은 루프로 짜인 비트를 캔버스 삼아 빠르고 날 선 플로우를 통해 망설임 없이 색을 입혀낸다. 랩의 템포도 처지지 않게 유지를 잘했고 플로우의 짜임새도 타이트하게 디자인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귀를 당기는 것은 그의 독특한 발음과 억양이다. 랩 또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적에 중점을 두거나 라임을 쌓아서 박자감을 입힌다기보다는 펑크 락 보컬처럼 텐션과 스케일을 높이기 위한 쓰임새로 이용하기 때문에 빠른 형태의 내뱉기에 가까운 딜리버리 형식을 취한다. 서사적 희열이 거세된 대신 귀에 감기는 사운드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설정된 셈이다.

 

와일리는 이 장르를 개척하면서그라임의 대부(Godfather of Grime)’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위상을 앨범타이틀로 사용하는 담대함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킴으로써 더욱 빛나 보이는 결과로 나타났다. 더 이상의 정규작은 없다고 선포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와일리의 디스코그래피에 [Godfather]가 마지막 작품으로 남게 된다면, 그것 역시 개척자다운 멋진 마침표가 아닐까 싶다.

 

 

15. Daye Jack - No Data

 

Released: 2017-03-24

Label: Jagjaguwar

 

힙합 역사 속에서 범죄, 마약, 섹스를 주요 소재로 삼지 않는 앨범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해당 범주를 벗어난 내용의 힙합은 이른바건전한 랩으로 분류되고 무시당하기 십상이었다. 이는 힙합이란 장르가 탄생하고 성장해온 배경과도 관계 있으며, 여전히 이 같은 경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엔 그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수준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음악의 완성도에 따라 랩/힙합에 씐 프레임을 넘어서 호소할만한 작품들도 간간이 나오고 있다. 나이지리아 태생의 아티스트, 다예 잭(Daye Jack) [No Data]가 그런 앨범 중 하나다.

 

본작을 관통하는 주제는자아 수용이다. 주체는 십 대와 갓 이십 대에 접어든 층이며, 다예 역시 여기에 속한다. 그는 어른들, 좀 더 적확하게는 아날로그 세대의 세계 속에 던져진 본인 또래의 디지털 세대가 느낄 혼란을 주소재로 삼았다. 무엇보다 강점은 다예의 퍼포먼스와 프로덕션이 어우러진 음악 그 자체다. 그는 가사적으론 2000년대를 논하지만, 프로덕션적으론 ‘80년대와 ‘90년대를 적극적으로 껴안았다. 그 결과, 힙합에 기반을 두고 알앤비, 펑크(Funk), 디스코, 8비트, 일렉트로닉, 신스 팝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그렇다고 해서 본작의 음악이 레트로 리바이벌이란 얘긴 아니다. 당대 유행한 장르를 소스 삼아 오늘날 사운드로 완성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면서도 굉장히 미래지향적이다. 이렇듯 [No Data]는 적당히 신선하고 적당히 펑키하며, 적당히 대중적이다. 그런데 이적당히가 모여서 아주 탄탄한 완성도로 귀결되었다. 한때 힙합 씬에서 무시받던 류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팝 랩 앨범이기도 하고, 실험적이지만, 적극적으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블랙 뮤직 앨범이기도 하다.

 

 

14. Roc Marciano - Rosebudd's Revenge

 

Released: 2017-02-21

Label: Marci Enterprises

 

2000년대 힙합에서 마피아 콘텐츠를 담은 마피오소 랩(Mafioso Rap, 혹은 범죄 랩) '90년대에 비해 비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마 제이-(Jay-Z)가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던 [American Gangster] 정도가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마피아 랩 앨범일 것이다. 올해 네 번째 솔로 앨범으로 돌아온 락 마르시아노(Roc Marciano) 이처럼 주류에서 보기 어려워진 마피아 랩 스타일만 꾸준히 고집하는 아티스트다.

 

랩보다 프로덕션에 힘을 집중했던 3집과 달리 외부 프로듀서의 초대가 늘었을 뿐, 본작에서도 그리 빠르지 않은 랩과 음산한 분위기를 즐기는 마르시아노의 성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마르시아노는 현악 음으로 주도하는 비트와 읊조리듯 연발하는 랩 속에서 라임을 연사하고("History"), 싱어 루 코트니(Lou Courtney)의 소울 넘버를 샘플링하며("Killing Time"), 프로듀서 애니모스(Animoss)와 함께 중독적인 피아노 루프로 귀를 사로잡기도 한다("Burkina Faso"). 총기와 각종 범죄를 의미하는 기가막힌 비유는 이번 앨범도 예외가 아니어서, 언제나 그랬듯이 마르시아노의 앨범은 무궁무진한 콘텐츠 덩어리로 보인다.

 

직유와 은유를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즐기는 듯한 마르시아노의 랩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묘한 중독성을 갖고 있다. 쿨 쥐 랩(Kool G Rap)과 래퀀(Raekwon)처럼 마피아 랩에서 떠오르는 인물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올해 새 앨범을 만들었지만, 락 마르시아노의 앨범보다 강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그래서인지 마르시아노가 본작을 통해 진정한 마피아 랩의 적자는 본인뿐이라고 외치는 듯도 하다.

 

 

13. Gold Link - At What Cost

 

Released: 2017-03-24

Label: Squaaash Club/RCA

 

믹스테입을 통해 신선한 사운드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골드링크(GoldLink)지만, 정규 데뷔작에서는 다소 설익은 시도와 느슨한 곡의 구성 탓에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댄서블한 사운드에 진중한 주제를 녹여내는 전략은 좋았으나 이를 보다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선 음악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이후 1년 반 만에 발표한 새로운 정규앨범 [At What Cost]를 들어보면, 골드링크는 어느 정도 답을 찾은 듯하다. 그만큼 발전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결과물이다.

 

앨범에서 골드링크가 찾은 답은 바로 그의 출신 지역인 DMV이다. 전작이 연인과의 이별 같은 러브스토리를 인종차별을 비롯한 사회적 문제의 비유로 썼다면, 이번엔 커리어를 위해 미 서부로 떠났다가 다시 D.C.로 돌아와 자신의 뿌리를 찾는 과정의 비유로 사용한다. 그러면서 특정 지명을 언급하거나 지역과 관련된 인물들을 레퍼런스 삼는 등, 앨범 내내 끊임없이 D.C. DMV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At What Cost]는 골드링크의 커리어에서 전환점이 될 만한 앨범이다. 그를 대표했던 퓨쳐 바운스의 틀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빈티지한 일렉트로닉과 트랩 등, 다양한 장르를 껴안으며 본인의 개성을 덧입혔다. 또한, 그동안 힙합 음악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D.C.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하며 골드링크만의 ‘D.C. 찬가를 완성했다. 기획과 프로덕션, 그리고 퍼포먼스의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 여태까지 들어본 적 없던 새로운 스타일의 앨범이 탄생했다.

 

 

12. CyHi The Prynce - No Dope on Sundays

 

Released: 2017-11-17

Label: GOOD Music, Sony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역작인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G.O.O.D. Friday] 시리즈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싸하이 더 프린스(CyHi The Prynce)는 오랫동안 정규작에 대한 욕망을 참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발표한 본작에서 그의 진가를 선보였다.

          

우직한 스토리텔링으로 묘사한 거리의 삶(Street Life), 그리고 거의 매 트랙 인용된 성경 구절 및 종교적 레퍼런스들은 태생적/환경적 한계 탓에 죄를 지었음에도 구원을 바라는 싸하이의 심리를 대변한다. 그래서 처절하고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다. 여기에 담긴 것은 클립스(Clipse)의 멋진 마약 딜러 앤썸도, 스쿨보이 큐(Schoolboy Q)의 잔혹한 스트리트 드라마도, 르크레이(Lecrae)의 정석적인 크리스천 랩도, 챈스 더 랩퍼(Chance The Rapper)의 현대식 팝 가스펠도 아니다. 싸하이가 설계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그러졌지만 부서지지 않고 올곧게 뻗은 그의 인생관과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No Dope On Sundays]는 굿 뮤직이 올해에 내놓은 앨범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 싸하이의 작사능력은 상위급이며, 랩 퍼포먼스 역시 상당한 수준이다. 구성도 알찬 데다가 참여한 게스트들 역시 좋은 역할을 해줬다. 싸하이가 여태 인내해온 7년이라는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11. Young Thug - Beautiful Thugger Girls

 

Released: 2017-06-16

Label: 300, Atlantic

 

영 떡(Young Thug)의 퍼포먼스는 이번 정규 데뷔작을 통해 랩-싱잉에서 랩을 떼어내고 싱잉에 훨씬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독보적인 수준으로 변화무쌍하며, 다른 보컬리스트에 비하면, 자유분방하다. 특히, 정통 보컬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본조차 되어있지 않을 그의 퍼포먼스가 노래의 영역으로 넘어오며 약점이 되긴커녕 전처럼 감탄을 자아내는 건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다. 되는대로 지껄이기와 토스팅(Toasting)과 정통 보컬 흉내내기의 중간에서 기가막힌 멜로디와 리듬을 만들어내는 떡의 퍼포먼스는 알앤비, 힙합 보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할만 하다.   

                                                                                                      

전작들에서부터 좋은 합을 들려준 런던 온 다 트랙(London on da Track)과 위지(Wheezy)는 물론, 초반부를 성공적으로 책임진 렉스 쿠도(Rex Kudo) 등이 포진한 프로덕션 역시 떡의 역할 변화에 맞춰 그 어느 때보다 멜로딕한 진행을 보인다. 특히, 비교적 미니멀한 프로덕션이 주가 되는 후반부보다 차분한 무드와 꽉 찬 편곡이 이어지는 전반부의 흡입력이 상당하다.

 

[Beautiful Thugger Girls]는 충분히 독창적인 영 떡의 보컬 퍼포먼스가과연 어디까지 더 변화하고 뻗어 나갈 수 있을까?’에 관한 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적어도 스튜디오상에선) 이미 보컬 퍼포먼스가 워낙 압도적인지라 단지 프로덕션의 수준만 유지해도 성공적인 정규 데뷔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번에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귀에 꽂히는 멜로디의 향연이자 괴상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무드의 집합체다. 영 떡의 음악은 현재 랩퍼와 보컬리스트, 모두 쉽게 넘보지 못할 영역에 진입했다.

 


 

10. Oddisee - The Iceberg

 

Released: 2017-02-24

Label: Mello Music Group

 

유력 인디 힙합 레이블 멜로 뮤직 그룹(Mello Music Group)을 대표하는 프로듀서 겸 랩퍼로 거듭나기 위해 그동안 오디씨(Oddisee)는 정규작을 비롯한 믹스테입과 컴필레이션을 꾸준히 쏟아냈다. 각 작품 사이의 공백이 상당히 짧았던 점을 고려해볼 때 엄청난 창작욕과 성실성이 현재 오디씨의 디스코그래피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작업량도 분명 중요한 부분이지만, 무엇보다 아티스트로서 그가 놀라운 이유는 여태껏 발표한 앨범들이 질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새 앨범 [The Iceberg]는 더욱 주체적인 이야기와 사상이 만들어낸 흑백 자화상과도 같다. 본인의 경험담을 재료 삼고 빈틈없는 리리시즘(Lyricism)을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제기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뚜렷한 선과 악이 드러나며, 그런 의미에서 전작에 비해 친절함이 상당 부분 거세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누구보다 평화주의자 같은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덕에 [The Iceberg]에는 반은 정직하고 반은 예상치 못한 재미가 담겼다. 

 

[The Iceberg]는 오디씨에게 거는 기대가 거의 모두 충족된 결과물이다. 그는 아직 젊지만, 사실상 완성 단계에 진입한 아티스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위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커리어는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다. 발전 가능성을 논하기엔 그가 걸어온 길과 성취한 음악적 결과가 상당한 수준을 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세만을 보았을 때 믿고 듣는 오디씨의 명성이 영원할 것만 같을 정도로 견고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9. Migos - Culture

 

Released: 2017-01-27

Label: Quality Control Music,Atlantic

 

그룹 미고스(Migos) 2013년을 집어삼킨 “Versace” 발표 이후, 해마다 굵직한 히트 싱글을 뽑아왔다. 또한, 작년에는 댑 댄스(Dabbing)가 재조명되고 세계적인 춤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지대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실 파급력과 상업적인 성과만을 종합한다면, 이 정도 이상의 업적을 과거에 이뤄냈거나 현재 진행 중인 힙합 아티스트만 한 트럭 분은 거뜬히 나온다. 그럼에도 이처럼 미고스를 치켜세운 이유가 있다.

 

정규 2집인 [Culture]는 그들이 그동안 구축한 승리 공식을 포함하여 현 트랩의 매력과 정수를 농축해 담은 결과물이다. 이들이 지향하는 단순함을 보고 과소평가했다가는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화려한 애드립과 더블링에 곧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더불어 시작부터 지체 없이 텐션을 만들어 나가는 점은 큰 매력이다. 하이라이트 구간이 없는 대신 깔끔하고 미니멀한 프로덕션과 개성 있는 플로우로 만들어낸 그루브가 일정한 온도로 흐름을 유지한다. 

 

현재 미고스의 위상과 영향력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팽창해있다. 그들이 자주 이용하는 플로우와 추구하는 프로덕션 스타일 역시 현 트랩의 전형적인 기조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트랩 아티스트라면 그들의 그늘 밑에 위치해 있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의 타이틀이 상징하는 바는 그들의 음악과 춤, 패션, 뮤직비디오 컨셉트만큼 뚜렷하다. 미고스는 분명 트랩 뮤직 아래에 새 영역, 혹은 문화를 개척해냈다. [Culture]엔 그러한 그룹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8. Rapsody - Laila’s Wisdom

 

Released: 2017-09-22

Label: Jamla, Roc Nation

 

랩소디(Rapsody)의 정규 2 [Laila’s Wisdom]은 특정 힙합 팬층에게 그 어느 작품보다 깊숙이 와닿을 만하다. ‘90년대에 적을 둔 플로우와 붐뱁 비트, 진득한 네오 소울 샘플 등, 비교적 정통적인 사운드와 방식으로 현세대의 흐름을 명확히 짚어내는 영민함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과거의 결과물에서부터 이어온 음악적 색깔과 캐릭터 역시 굳건하게 설계됐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탄탄한 내공을 가진 엠씨가 성공하는 방식과 발자취가 남아있다. 랩소디는 본인의 솔직하고 해학적이며 주관적인 면모를 어필하면서 한순간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랩소디의 내러티브 능력이다.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여러 사회적 이슈를 재치 있게 꼬집고 힙합을 포함한 블랙 문화에 대한 찬사를 조화롭게 녹여냈다. 마치 켄드릭 라마의 앨범 [DAMN.]처럼 트랙마다 다른 주제를 토대로 이야기를 채워 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예컨대 “Power”에서는 권력을 악용하는 자와 그 힘에 희생되는 대상을 서술하고, “Chrome”에서는 남성에게 쓰인 편견을 꼬집는 한편, “Sassy”를 통해 끈기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Black & Ugly”에서는 외모지상주의를 다룬다.

 

[Laila’s Wisdom]에선 힙합 클래식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공통으로 지닌 덕목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수준 높은 프로덕션과 뚜렷한 메시지를 담은 힘 있는 가사, 게다가 로린 힐(Lauryn Hill)을 연상시키는 완숙미 넘치는 랩까지. 랩소디의 퍼포먼스는 시종일관 비트를 압도한다. 그녀는 이 앨범을 통해 현세대에서 가장 재능있는 리리시스트(Lyricist)이자 랩퍼 중 한 명임을 확실히 증명했다.

 

 

7. Jay-Z - 4:44

 

Released: 2017-06-30

Label: Roc Nation UMG

 

제이-(Jay-Z)의 열세 번째 정규작 [4:44]를 간단히 정의하자면, 랩 슈퍼 히어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하는 스핀오프 앨범이라 할만하다. 본작은 제이-지를 떠올릴 때 대표적으로 연상되는 승리자 이미지를 어느 정도 구축하고 있지만, 실상 서술적인 초점은 그가 경험한 내면적인 갈등과 후회, 그리고 성장 등, 사적인 영역에 기반을 둔다. 그렇기에 [4:44]는 여타 제이-지 주연의 히어로물과 궤가 좀 다르다. 방탄복과 가면을 스스로 벗어 던진 전지전능한 인물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들로서, 씬을 이끌고 있는 리더로서, 그리고 미국 사회의 흑인 중 한 사람으로서 담담하게 내뱉는 진솔한 독백들이 앨범을 빛나게 하는 요소다. 그 덕에 제이-지의 디스코그래피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애처로우면서도 낭만적인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앨범의 프로덕션 역시 그동안의 작품들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샘플링을 통해 곡의 뼈대를 만들어가는 작법은 여태껏 많이 선보였지만, 음량의 스케일, 쓰여진 악기, 프로덕션 진의 규모, 그리고 대중성을 가미한 트랙의 유무는 달라진 요소들이다. 노 아이디(No I.D.)를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로 임명하고 전권을 쥐여준 점도 특기할만한 지점이다. 이제까지 제이-지는 한 명의 프로듀서에게 이런 식으로 총괄 프로덕션을 일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제이-지는 힙합 씬이 만들어낸 현실판 사기 캐릭터 그 자체다. 랩 슈퍼스타, 인상적인 걸작들을 보유한 아티스트, 트렌드 세터, 백만장자, 성공적인 사업가 등이 그를 대변하는 직함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4:44]는 사실상 힙합 아티스트로서 황혼기에 다다르고 있는 제이-지가 큰 위험을 감수하고 발표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작은 [The Blueprint]처럼 장황하지 않고, [The Black Album]처럼 대중적으로 큰 획을 긋지도 못하며, [American Gangster]처럼 멋진 컨셉트로 기획된 작품도 아니다. 그 대신 어느 때보다 빛나는 솔직함과 로우(raw)한 랩을 통해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어떤 면에서는 그가 보유한 명반들과 비견되는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6. Tyler, The Creator - Flower Boy

 

Released: 2017-07-21

Label: Columbia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네 번째 정규작 [Flower Boy]엔 어느새 훌쩍 커버린 20대 중반의 그가 서 있다. 여태껏 타일러가 선보인 캐릭터와 자극적인 기름기를 걷어내고 만든 자서전과도 같은 작품이다. 200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이래 수많은 컬트 팬을 생산해낸 그의 무기들, 이를테면 막무가내 기질 다분했던 청소년기에 폭풍처럼 써 내려간 “Yonkers” 때의 광기나 폭력성 넘치는 라인들과 기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위트 넘치는 순간 등이 눈에 띄게 희석됐다. 그래서 이 앨범에 담긴 선정적인 콘텐츠와 하드코어 뱅어의 수는 비교적 미미한 편이다. 이 때문에 본작은 [Bastard](2009), [Goblin](2011), [Wolf](2013)를 거치며 타일러가 그려낸 본인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사상에 기반하지 않은 차분하면서도 진솔함이 돋보이는 앨범으로 마감됐다.

 

제일 먼저 귀를 잡아끄는 요소는 타일러가 전곡을 통솔한 프로덕션이다. 여전히 엔이알디(N.E.R.D.)로부터 받은 영향력이 느껴지는 가운데, 전작인 [Cherry Bomb]에 수록된 “Find Your Wings” “2Seater”, “Fucking Young” 등으로 대변되는 타일러식 미디엄 템포의 랩 트랙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Who Dat Boy” “I Ain’t Got Time”이 중간에 배치되어 펀치를 넣는 구성이다. [Cherry Bomb]과 직접적인 비교를 하자면, 화력은 떨어질지언정 전체적인 색채와 배합이 주는 풍부함은 물론, 전작과 관련해서 말이 많았던 오디오 믹싱 등, 기술적인 완성도를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압도한다.

 

[Flower Boy] 'Scum Fuck Flower Boy'라는 타일러의 별명을 비공식적인 타이틀로 사용한다. 그야말로 본작이 그려낸 타일러를 정확히 표현하는 절묘한 모순어법이다. 정서적으로 공허한 돈 많은 랩 스타, 동심으로 가득 찬 키덜트 등, 그를 나타내는 수식어들을 랩과 스토리 라인, 그리고 프로덕션의 조화를 통해 세련미 있게 풀어냈다. 그만큼 [Flower Boy]는 타일러의 최고 역작이자 올해 손꼽히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5. Vince Staples - Big Fish Theory

 

Released: 2017-06-23

Label: ARTium, Blacksmith, Def Jam

 

캘리포니아 롱 비치 출신의 래퍼 빈스 스테이플스(Vince Staples)의 이름 옆에는 처절한 현실주의, 냉소적인 시선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에게 음악은 단순한 유흥의 도구가 아니다.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훌륭한 도피처이자 이상과 욕망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와도 같다. 시대를 꿰뚫는 냉철한 가사와 수준 높은 플로우로 무장한 빈스는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단과 힙합 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두 번째 정규앨범 [Big Fish Theory]에서도 그의 예리한 통찰과 뛰어난 음악적 감각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프로덕션이다. 전작들을 지배했던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다소 누그러졌고, 그 여백을 빠른 박자의 댄서블한 비트가 대신하면서 보다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로 완성됐다. 전작들과의 차이는 빈스 스테이플스의 랩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눈에 비친 현실을 창의적인 비유와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그려내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의 노랫말은 언제나처럼 매력적이지만, 모순 가득한 사회와 그로 인한 불안을 표출하는 데 치중했던 전과 달리 이번엔 본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안에 혼재된 여러 감정을 묘사하는 것에 더욱 집중한 느낌이며, 한 차원 넓어진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기존 틀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자 한 빈스 스테이플스의 예술적 지향과 가치관은 여전히 유효하고 힘을 발휘한다. 앨범에 드러난 그의 패기와 열정, 그리고 재치는 지난날과 다를 바 없으며, 한층 성숙하고 깊어진 메시지가 또 한번 진한 여운을 남긴다.

 

 

4. Run The Jewels - Run The Jewels 3

 

Released: 2016-12-24

Label: Run the Jewels Inc., RED

 

4년 사이 킬러 마이크(Killer Mike)와 엘-(El-P)는 런 더 쥬얼스(Run The Jewels, 이하 ‘RTJ’) 이외엔 별도의 뚜렷한 행보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만큼 RTJ는 두 아티스트가 공들인 프로젝트였고, 공언한 대로 세 번째 작품이 발표됐다. 원래 2017 1월 발매 예정이었지만, 예상을 깨고 201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갑작스럽게 공개되었다. 늘 그랬듯이 무료 다운로드 방식으로.

 

일단 앨범을 들어보면 이들의 지향점이 달라졌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사운드의 운용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가사를 들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불과 2년 전인 [Run the Jewels 2] 시절엔 마초적인 성향이 강했던 반면, 본작에서는 저항적이고 선동적인 면을 부각했다. 이 같은 부분이 예전에도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무거운 주제를 다룬 곡의 비중이 더 커졌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엘-피와 킬러 마이크가 저항군(레지스탕스)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피를 주축으로 하는 프로덕션은 이번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은 RTJ 프로젝트 3부작 중 가장 정교하다는 인상을 준다. [Run the Jewels 3]는 전보다 한층 더 정교한 완성도의 비트를 제공한다.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대부분인 현 힙합 계의 풍토와 달리, -피와 킬러 마이크의 RTJ 프로젝트는 어느덧 그들 각자의 커리어에서 정점으로 굳어가고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최고의 감각을 유지하는 건 물론, 발전까지 거듭하는 두 아티스트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3. Kendrick Lamar - DAMN.

 

Released: 2017-04-14

Label: Top Dawg, Aftermath

 

천재들은 한번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의미는, 머물렀던 영역이 진부해졌거나 이미 통달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변화는 항상 많은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창작자의 자의와 상관없이 그 결과물에는 주위에 의해 강압적으로 더 많은 예술적 의미와 책임감이 부여되는 경향이 있다. 대작만을 써온 켄드릭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DAMN.]의 첫인상은 그런 의미에서 다소 소박하게 다가온다. 이는 그가 품을 수 있는 스케일이 얼마나 거대한지 이미 알기 때문에 뒤따르는 상대적 효과라 해도 무방하다.

 

비교점이 두드러지는 요소는 비단 스케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본작은 여러 의미로 켄드릭의 다른 앨범과 동떨어진 결을 지닌다. 초반부터 텐션을 폭발시키는 트랩 뱅어 “DNA.”의 프로덕션이나 비 사이드(B-side) 작품, 혹은 믹스테입에서 간혹 들을 법한 여러 형태의 디제이 샤웃 아웃(Shout out), 단순하고 일차원적으로 쓰여진 라인과 공격성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몇몇 트랙은 여태껏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라마의 모습에선 보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켄드릭이 앨범 내내 유지하는 태도다. 그는 여느 때보다 유독 어둡고, 어떤 강력한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있다.

 

본작의 템포는 후반부의 “FEAR.”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뒤바뀌고, 믿기 어려울만큼 놀라운 실화를 담은 “DUCKWORTH.”에 이르러 칼자루를 청자에게로 넘긴다. 앨범 내내 두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고민과 방황을 반복하던 켄드릭은 마지막 곡의 총성과 함께 되려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이처럼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되는 [DAMN.]은 결국, 아티스트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출발한 후 객석에 맞닿으며 막을 내린다. 이는 결말이 뚜렷했던 전작들과 다른 길을 지향하는 켄드릭의 의도를 나타내며, 그 어떤 작품보다 감정적 여운이 진하게 남는 효과로 마감됐다.

 

 

2. Brockhampton - Saturation II

 

Released: 2017-08-25

Label: Question Everything Inc.

 

브록햄튼은 케빈 앱스트랙트(Kevin Abstract)가 주축인 랩 그룹 얼라이브신스포에버(AliveSinceForever)에서 비롯됐다. 그들이 활동하던 칸예 웨스트(Kanye West)의 인터넷 팬 포럼의 몇몇 회원들이 팀에 합류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구성원은 프로듀서, 아티스트, 사진작가, 웹 디자이너, 매니저 등 다양하다. , 음악이 만들어지고 팔리는 전 과정을 직접 담당할 수 있게끔 수직적 통합을 이룬 기업의 형태를 띤 셈이다. 하지만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음악 때문이다.

 

1집 이후, 약 두 달여 만에 나온 [Saturation II]는 전편이 지닌 강점들을 재활용한 작품이다. 출중한 랩 퍼포먼스와 세련미를 갖춘 프로덕션까지 그대로다. 이처럼 [Saturation II]의 구성 방식이 전작과 같음에도 식상하기보다 획기적인 이유는 연출법이 너무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앨범을 전개하는 템포는 시종일관 날이 서 있으며, 각 트랙은 동일한 호흡으로 마감됐다. 그 덕에 프로덕션적인 유기성이 돋보이며, 다음 곡으로 유려하게 넘어가는 흐름의 비율도 매우 높다. 또한, 앞 트랙의 끝부분과 뒤 트랙의 시작점의 음폭에 큰 변화를 주며 긴장감을 부각한 점도 눈에 띈다. 이를 통해 청각적 자극과 극적인 효과를 끌어내면서 구성에 흡입력을 더했다. 본작의 기획을 담당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와 완급 조절 능력이 완벽에 가깝다고 할만하다.

 

랩과 보컬 퍼포먼스는 여전히 훌륭하고 개성도 다들 뚜렷한 덕에 시너지 효과가 쉴 새 없이 일어난다. 케빈 앱스트랙트(Kevin Abstract)가 대부분을 담당한 후렴 역시 심플하지만 잘 짜였고, 많은 곡에 등장하는 백업 코러스도 기대 이상이다. [Saturation II] 1집의 성공에 힘입어 높아진 브록햄튼에 대한 기대치에 완벽히 부합한다. 단시간 내에 이렇게 정교하고 재기 넘치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은 참으로 놀랍다.

 

 

1. Big K.R.I.T. - 4eva Is A Mighty Long Time

 

Released: 2017-10-27

Label: Multi Alumni, BMG

 

빅 크릿(빅 크릿) 2000년대 트랩 뮤직(Trap Music)의 득세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고 들어왔다. UGK, 에잇볼 앤 엠제이쥐(8Ball & MJG), 게토 보이즈(Geto Boys) 등등, 남부 힙합 선배들이 구축해놓은 특유의 사운드, , 텍사스 블루스와 소울, 그리고 서부 힙합의 조합에 근거한 프로덕션을 계승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감한 실험과 탁월한 리리시즘(Lyricism)을 더해 한층 발전된 남부 힙합을 들려준다.

 

이번 세 번째 정규 앨범에서도 그렇다. 에잇볼 앤 엠제이쥐가 종종 사용하던 상징적인 표기('4eva')를 따온 타이틀부터 ‘90년대 남부 힙합과 선배들에 대한 존경이 드러나고, 이를 밑바탕으로 하여 완성한 기가 막힌 곡들이 그득하다. 두 장의 디스크, 러닝타임 85분에 이르는 근래 보기 드물게 꽉 찬 구성 또한, 이목을 사로잡는다. 그는 힙합 아티스트인 빅 크릿과 랩퍼 이전에 한 인간인 저스틴 스콧(Justin Scott/본명)의 서사를 각 디스크에 담아 더블 앨범 컨셉트를 십분 활용한다.

 

‘빅 크릿 사이드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비교적 가볍고 자유로운 주제를 걸출한 라이밍으로 담아냈다면, ‘저스틴 스콧 사이드는 현 세계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과 그 속에서 구축한 개인 서사를 눈부시게 펼쳐놓았다. 오늘날엔 이처럼 자아 분리의 기믹이 더 이상 신선하지 않지만, 결국, 좋은 음악엔 설득될 수밖에 없다.

 

[4eva Is A Mighty Long Time]에서 빅 크릿은 남부 힙합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듯하다. ‘90년대 중반, 극단적인 실험까지 거침없이 행한 아웃캐스트 이래, 남부 힙합 역사 속에서 이 같은 시도와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이는 빅 크릿이 유일하다. 더불어 데뷔작부터 정규 앨범 석 장을 연속으로 걸작의 반열에 올린 힙합 아티스트가 드물다는 사실도 주목해야한다. 당장 생각나는 이가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뿐이다. 이제 그 리스트에 빅 크릿의 이름도 추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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