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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페이스' 논란, 그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남성훈 작성 | 2020-08-10 00:54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23 | 스크랩스크랩 | 17,385 View



글: 남성훈


의정부 고등학교의 졸업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주목받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해 다양한 분야의 이슈를 고등학생의 재치 있는 시선으로 풀어낸 분장과 퍼포먼스는 단순한 코믹 패러디를 넘어 다양한 반응을 불러왔고, 전국민이 기다리는 몇 안 되는 전통이자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올해는 매우 큰 논란을 일으켰다. 'Funeral Dance', 혹은 'Coffin Dance'로 알려진 장례댄스 밈(Meme)을 패러디한 학생들의 사진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일명 '관짝소년단'으로 알려진 이들인데, 장례를 축제로 승화시키는 가나의 풍속에 따른 일종의 장례서비스라고 한다. 2020년 초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각심을 알리는 코믹 영상에 이들의 퍼포먼스가 사용되며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화제성은 물론, 내포한 의미까지 의정부 고등학교 졸업사진에 딱 들어맞아 보인다.


 



하지만 학생들이 그들의 피부색까지 재현하기 위해 흑인 분장을 하면서, 문제제기를 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흑인으로 분장하는 것 자체가 다름아닌 인종차별의 가장 상징적인 행위인 '블랙페이스(Blackface)'이기 때문이다. 사실, 의정부 고등학교 졸업사진 중 그간 흑인 분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0년 다시 불붙은 미국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며 경각심이 커져 이슈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블랙페이스'는 무대에서 과장된 흑인분장을 한 백인이 춤과 노래를 공연한 19세기 후반 미국의 극장 예술, ‘민스트럴쇼(Minstrel Show)’가 기원이다. 지배계급이 노예 분장을 한 것 자체로 웃음을 유발하고, 흑인에 대한 비하성 고정관념을 공고히 했다. 민스트럴쇼는 미국의 대중문화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고, 시대상을 반영한 일부 긍정적 분석도 존재하지만, 블랙페이스 형식 때문에 인종차별의 상징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민스트럴쇼의 생명이 다 한 후에도 블랙페이스는 사라지지 않은 채 현재까지 인종차별의 가장 손쉬운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블랙페이스를 포함하여 피부색 분장 자체를 없애려는 다방면의 노력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만, 블랙페이스를 뒤집어 백인의 인종차별과 흑인 억압의 역사를 오히려 더 떠올리게 하는 화이트페이스 퍼포먼스는 일부 논쟁이 있지만, 그 함의로 인하여 현재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이번 이슈로 돌아와보자. 우선,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장례식 댄스' 밈을 패러디한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인종차별적 의도를 가지고 졸업사진을 찍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섣부른 비약이다. 그러나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들의 흑인 분장은 명백한 인종차별 행위이다. 다르게 말하면, 인종차별주의자와 인종차별적 행위를 문제 삼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아시아와 한국의 상황을 조금 더 면밀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20
세기 중반 이후, 일본과 한국을 중심으로 TV쇼를 비롯한 문화상품과 공산품에 블랙페이스 이미지가 많이 차용됐다. 다층적인 맥락은 생략된 상태였지만, 이를 인종차별적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과장된 흑인 분장으로 대중의 웃음을 유발했고, 원시적인 모습을 포함해 다양한 비하적 표현이 결합됐다. 하지만 흑인의 노예역사나 흑인인권 맥락이 부재한 한국을 비롯한 여타 아시아 국가에서는 별다른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았고, 당연히 행위 당사자와 기업 모두 타격을 받을 일도 없었다.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나올 만큼 흑인의 비중이 큰 나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과거 블랙페이스가 크게 문제시된 적이 있긴 하다. 장두석과 이봉원이 흑인분장을 하고 진행했던 개그 코너 시커먼스. 이 코너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해외의 비난을 우려하여 폐지됐다. 이는 블랙페이스에 대한 한국의 이중적인 인식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자기인식과 악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블랙페이스에 대한 명분을 내부적으로 얻어내고 있던 것이다.



 


2010
년대 이후 서양으로까지 번진 한류열풍과 유튜브를 통한 파급력으로 이런 아시아 및 한국 대중문화의 블랙페이스는 종종 해외에서 문제시됐다. 그중 2012년 예능 [세바퀴]에서 출연진이 흑인분장을 하고 나온 영상이 세계적으로 논란이 된 사건은 이번 의정부 고등학교 졸업사진 논란과 유사점이 많다. 당시 제작진은 흑인 비하가 아니라, 아기공룡 둘리의 캐릭터마이콜분장을 했을 뿐이라면서 인종차별 의도가 없다고 해명했는데, 장례댄스 패러디가 인종차별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는 이의 가장 큰 논거가 흑인 전체를 비하하는 것이 아닌, 특정 밈을 흉내낸 분장일 뿐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거는 설득력이 많이 부족하다. ‘민스트럴쇼는 흑인 자체를 대상화했지만, 그 이후의 대중문화 속 블랙페이스 논란 대부분은 특정인물로 분장하며 벌어졌다. 최근 지미 키멜(Jimmy Kimmel)과 지미 팰론(Jimmy Fallon)이 과거 흑인인 특정인물로 분장했던 일에 정식으로 사과한 것이 좋은 예이다. 그 둘은 당연히 흑인을 노예로 부리지도 않았고, 인종차별 언행을 했던 이들도 아니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백인이 흑인분장을 하고 나와서 대중의 웃음을 유발했고, 그 웃음 안에는 당연히 비극적 맥락이 포함되어 있다.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들의 패러디 역시 마찬가지다. 코믹한 밈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피부색을 검게 칠한 한국인 고교생 자체가 주는 웃음에는 인종적 맥락이 담겨있다. 장례댄스의 리더이자 당사자인 벤자민 아이두(Benjamin Aidoo)가 인스타그램으로 그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남겼지만, 블랙페이스 논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밈으로 인생이 바뀐 그에게 한국 고등학생들의 패러디 자체가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의 반응과 블랙페이스라는 행위는 별개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그가 의정부 고등학생들의 퍼포먼스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추켜세운 것이 블랙페이스의 인종차별적 맥락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예로 든 키멜과 펠론을 비롯하여 다른 피부색의 특정인물로 분장했다가 사과한 이들은 당사자의 사과요구에 응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사과를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블랙페이스는 무조건 욕을 먹어야 하는가? 물론, 예외는 있다. 블랙페이스의 인종차별 맥락을 드러내거나 피부색으로 겪은 부당한 처사를 밝힐 때 정도가 허용된다. 그 흥미로운 예가 푸샤티(Pusha-T)와 드레이크(Drake)의 디스전이다. 푸샤티는 “The Story of Adidon”을 공개하며, 드레이크가 블랙페이스를 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는 굉장한 후폭풍을 불러왔다. 드레이크는 흑인과 유대인 혼혈로 미묘한 인종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레이크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 곡 대신 블랙페이스 사진에 대한 해명을 편지 형식으로 공개했었다. 그는 배우 시절, 젊은 흑인 배우가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풍자하기 위한 프로젝트에서 흑인이 얼마나 이상하게 그려지는지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었다고 밝혔다.



 


영화 [트로픽 썬더, Tropic Thunder]에서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도 좋은 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흑인으로 분했는데, 블랙페이스의 부당함을 알리는 풍자 안에서 허용됐다. 그럼에도 그는 백인이기 때문에 2020년인 최근까지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있으며, 언제나 매우 진지하게 답변한다. 그만큼 단순하게 바라보기 어렵고 민감한 일인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대중문화와 광고, 산업에서 블랙페이스를 포함해 인종비하의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부분 인종차별 의도는 없었고, 한국의 대중에게 인종차별적으로 읽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한 다양한 내부적 방어논리가 세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그 변화의 폭은 크다. 여전히 수많은 코미디/예능 프로그램의 블랙페이스가 존재하지만, 논란이 되면 사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거의 행위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후에라도 해명하고 사과하기도 한다. 수십년 만에 초코바의 흑인 캐릭터를 펭귄으로 바꾸거나, 인종적 편견을 가중한 가사의 노래에 대해 10년만에 가수가 사과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렇듯 그간의 사례를 살펴보면, 의정부 고등학교 졸업사진의 블랙페이스 논란은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다. 다만, 그 행위자가 연예인이나 기업이 아닌 데다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문제제기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방어논리가 그 어느 때보다 극대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설득력이 생기진 않는다. 이런 상황일수록 격화된 여론에 올라타는 대응이 아닌 인종차별적 행위에 대한 심도 있는 가이드와 상식적이고 명확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한국 밖에서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억울한 낙인이 찍히고, 연예인이나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후에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 논란으로 한국이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는 일상적인 인종차별적 행위와 내부 정서를 인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강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긍정적 변화를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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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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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dontgivea
    1. idontgivea (2020-08-10 01:52:10 / 156.146.35.**)

      추천 3 | 비추 1

    2. 네이버에 걸린 언론 기사 보면서 기자들 수준에 구역질이 났는데
      그래도 리드머는 최소한 글 같은 글을 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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