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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트레인 - PAINGREEN
김효진 작성 | 2020-11-24 18:23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30 | 스크랩스크랩 | 8,515 View

Artist: 에이트레인(A.TRAIN)
Album: PAINGREEN
Released: 2020-10-28
Rating: 
Reviewer: 김효진









죽음을 성찰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는 것과 같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칫 공허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생의 끝을 염두에 두었을 때에야 찰나에 의미가 생기며, 그 순간을 주체적으로 다룰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니체는 자살을삶에 대한 최고의 긍정이라고 보았다.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는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과 같아서 자살의 목적은 자기 고양(
高揚)에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죽고 싶은 마음은 삶에 대한 갈망이다.

 

에이트레인(A.TRAIN)의 새 앨범 [PAINGREEN]에는 어딘가로 닿고 싶어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한 편의 소설처럼 진행된다. 이야기 속 화자는 삶의 목적을 잃은 듯 바늘이 고장난 나침반("NAKED ODYSSEY")을 들고 공허로 몰린 듯 하지만, 너른 강을 동경하고("CROSS THE RIVER") 이따금씩 사랑으로 혼란스러웠다가("HURT", "우리가 불 속에 놓고 온 것들") 이내 부유하며("견딜 만큼만") 자유를 얻는다("그래 그렇게"). 여기서 '나침반'이라는 소재는 복선과 같다. 초반에 자리한 "NAKED ODYSSEY"에 등장한 뒤 후반부 "CORK / art nouveau"에서 다시 쓰이며 앨범 전체를 더 밀도 있게 묶는다.

 

화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죽음으로 보인다. 에이트레인은 이를 은유적이면서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일례로 강을 건넌다("CROSS THE RIVER")는 표현은 강 건너 반짝거리는 세상을 동경한다는 뜻일 수도 혹은 강에 몸을 던진다는 뜻일 수도 있다. "우리가 불 속에 놓고 온 것들"은 시체를 태우는 화장(火葬)을 떠올리게 하며, 'Suicide(자살)'는 비슷한 발음의 "SWEET SIDE"로 바꿔 표현됐다. 곳곳에 '죽음'을 심어 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날아가면 된'다는 결말은("그래 그렇게") 끝내 화자가 '자신만의 북극성'을 좇아("CORK / art nouveau")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처럼 다가온다.

 

전작들과 비슷하게 침잠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아티스트의 설명대로 본작의 음악은 초록빛을 띈다. 타이틀 트랙들에서 사운드 기반을 잡는 것은 기타 리프, 낡은 피아노, 오르간 소리다. 정제돼 있지 않은 악기 소리로 탁월하게 공간감을 실현한다. 마치 우거진 이파리들 사이에서 아스라히 부서지는 햇빛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에이트레인은 알앤비, 일렉트로닉, 아이슬란딕 포크까지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든다. 이는 본작 속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며 공감각적으로 울창한 숲을 떠올리게 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은유하는 것만 같다.

 

[PAINGREEN]은 훌륭한 유기성을 지닌 대신 전작들보다 트랙별 특징이 덜하다. 그러나 이것이 결점은 아니다. 비선형적 흐름이 주는 매력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이다. 비선형적으로 흐르는 멜로디가 제 자리에서 이야기의 줄기를 잇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에이트레인은 피비알앤비(PBR&B)에 기반을 두고 불협에 가까운 짜임새를 만드는 아티스트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비트를 구축하기도 한다. 초반부터 현재까지 고수하며 발전시킨 그만의 음악 스타일이다. 본작은 이 같은 특징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앨범이다. 자살, 죽음 같은 어두운 키워드와 에이트레인이 축조한 어지러운 사운드가 조화되어 높은 시너지를 낸다.

 

PLEASE SOMEONE”은 본작의 중추다. 여린 피아노 소리가 홀로 발을 딛자 다른 악기들도 그 위에 조심스레 사운드를 쌓는다. 본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운드를 구현하며 거대한 공간감을 감각하게 하지만, 동시에 쓸쓸하고 처량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 속에 그려지는 인물도 삶의 경계에 서 있는 듯 하다. 'Please someone tell me what should I do'라는 구절은 마치 대성당 안에 홀로 처절한 기도를 올리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게 만든다.

 

시상(詩想)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에이트레인의 목소리다. 건조하면서도 우울에 찬 목소리는 앨범이 진행될 수록 화자가 겪는 감정에 함께 매몰되게 한다. 특히 "바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견딜 만큼만"이 그렇다. 목소리만으로도 화자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전자를 에이트레인의 목소리와 자연 소음으로만 단조로이 구성해 숲속에 서서 바다를 바라만 보는 화자를 유추할 수 있으나, 후자의 후반부에서는 적절한 필터를 활용해 물에 잠긴 듯한 효과를 살려 화자가 바다에 들어 갔음을 짐작하게 한다. 동경하는 곳으로, 혹은 생의 끝으로. 이는 앨범 전체적인 이야기와 궤를 같이 하며 짜임새를 더욱 촘촘하게 한다.

 

삶은 강제적이다. 타인에 의해 출생이 선행 되었을 뿐, 그 누구도 의지를 갖고 삶을 시작하지 않았다. 반면 삶을 끝맺는 것은 자의의 영역이 될 수 있다. 고통을 잊고자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주체성이 깃든 행위다. 에이트레인은 생의 경계에서 이 역설적인 물음을 고찰한다. 더 깊게 가라앉는 듯 보이지만, 그 아래에서 자유롭게 부유한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어렴풋이 하나의 문장이 따라온다. 살고 싶다. 농담 같은 진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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