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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스카이민혁
Album: 해방
Released: 2023-10-01
Rating:
Reviewer: 황두하
래퍼들에게 ‘성공을 향해 가는 치열한 과정’만큼 좋은 이야깃거리도 없다. 그만큼 많은 래퍼가 최소 한 번은 지난한 과거를 노래로 만든다. 이 같은 서사가 뛰어난 랩과 훌륭한 음악을 만났을 때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스카이민혁의 정규 앨범 [해방] 역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음악에 빠지게 된 계기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소상히 풀어낸 첫 곡 “14-23”은 구체적인 상황 묘사와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 선택, 낮게 읊조리며 서서히 감정을 끌어올리는 랩이 어우러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 근래 들었던 한국 힙합 앨범의 가장 인상적인 첫 곡 중 하나다.
이어지는 “식사”부터는 래퍼로서의 패기와 씬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을 담았다. 다소 뻔한 주제의 곡이지만, 진심이 느껴져서 몰입하게 된다. “14-23”을 통해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성공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깊게 각인된 덕분이다.
일례로 아버지를 따라 야망을 갖고 살겠다는 “아버지”는 단순한 수식처럼 느껴지지 않고, 과거 그랜드라인 엔터테인먼트(Grandline Entertainment) 소속이었던 이들이 뭉친 XXK의 단체곡 “XXK Next Level”은 막내인 스카이민혁이 주도하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앨범의 백미는 “공생”에서 “욕심”까지의 후반부다. “14-23”으로부터 이어진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의 추한 모습과 열등감 등을 하나하나 파헤치며 전시한다. 이를 통해 스카이민혁이라는 래퍼의 내면에 더욱 깊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곡 “욕심”에 이르러 자신을 괴롭히던 마음에서 벗어나 더 중요한 가치를 좇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엔 제목처럼 묘한 해방감이 느껴진다.
다만, “현주소”, “내 방에서 나가”처럼 힙합 씬 전체를 비판하는 곡에서는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낼 때보다 가사의 날카로움이 덜하다. 공격적인 태도와 달리 두리뭉실하고 뻔한 라인들로 일관해 속 시원함이 없다. 식케이(Sik-K)와 아우릴 고트(Ourealgoat)를 향한 디스도 인상적이지 않다.
프로덕션 면에서는 붐뱁(Boom Bap), 트랩(Trap), 멤피스 랩(Memphis Rap) 등등, 힙합의 여러 하위 장르를 잘 구현했다. 특히 날카로운 신시사이저로 1980년대풍의 붐뱁 사운드를 세련되게 빚은 “식사”, 둔탁한 베이스 라인과 독특한 노이즈 소스, 그리고 간간이 울리는 피아노 연주로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현주소”, 리듬 파트를 최소화하고 랩의 감정선에 따라 변주가 이루어지는 “공생” 등이 주목할 만하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가운데 하이톤의 랩을 중화시키며 어우러진다.
[해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비약적으로 발전한 랩이다. 전보다 조금 낮아진 허스키한 톤으로 많은 단어를 빠르게 뱉어내면서도 일정한 리듬감을 유지한다. “14-23”을 비롯하여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는 곡에서 그의 랩이 더욱 빛을 발한다.
반면, 톤을 한껏 올려 랩을 뱉을 때는 리듬감이 다소 불안하고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식사”부터 “파이트”까지 텐션을 끌어올려 격양된 상태를 유지하는데, 진행될수록 피로감이 쌓인다. 가장 격하게 랩을 쏟아내는 “현주소”, “내 방에서 나가”, “파이트”는 대표적이다. “파이트”에서 코르 캐쉬(Kor Kash)가 등장하기 전까지 찢어질 듯 높은 톤으로 뱉는 스카이민혁의 랩은 듣기 어려울 정도로 과하게 다가온다.
스카이민혁은 [해방]이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성공 서사를 완성했다. 무엇보다 실력이 몰라보게 발전한 랩과 직설적인 어투로 풀어낸 서사의 힘이 주효했다. 비록 중반부에서의 강약 조절은 아쉬우나 이전까지 처해있던 상황 속에서 스카이민혁을 ‘해방’시키기에는 충분한 완성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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