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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음악이다.
강일권 작성 | 2011-05-13 21:24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31 | 스크랩스크랩 | 40,834 View



*이번 칼럼에서 다루는 힙합의 음악적인 이야기는 ‘랩’을 떼어내고 ‘프로덕션’에 국한된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힙합, 참 좋죠. 저도 가끔 힙합 들어요. 근데 힙합 하는 친구들은 너무 음악을 쉽게 쉽게 만들려고 하니까, 그게 좀….”

약 1년 반쯤 전일 것이다. 어느 정도 잘 나가는 타장르 뮤지션이 내게 이 말을 건넨 게. 내가 힙합과 알앤비를 전문으로 다루는 곳의 편집장이었기에 그가 말을 아껴서 그렇지, 기실 저 말 줄임표 뒤에는 ‘그래서 힙합은 다른 장르보다 한 단계 낮은 음악이다.’라는 속내가 숨어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힙합음악에 대한 시선은 학창시절 ‘힙합은 음악이 아니야. 쓰레기지!’라고 울부짖던 록 마니아 동창 녀석과 핏대세우며 논쟁을 벌이던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전 세계 대중음악의 흐름을 이끄는 대표적인 장르가 된 지 오래이고, 이미 고유의 음악적인 특성을 인정받았건만, 유독 국내에서는 음악적으로 폄하되기 일쑤다. 그 이유가 뭘까… 를 생각해보니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르더라. 많은 타장르팬들과 뮤지션의 힙합에 대한 무지(無知)와 디스리스펙(Disrespect)이 하나, 힙합인들(뮤지션, 전문가, 리스너 등 이 판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모든 이)의 허술한 대응이 다른 하나다.

난 무엇보다 힙합음악에 대한 무지와 선입관에서 비롯된 폄하발언들-이를테면, ‘힙합이 음악이냐?’, ‘힙합, 그거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음악이잖아.’, ‘그냥 대충 만들면 되는 거 아냐?’ 등등-에 대한 힙합인들의 대응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곧 힙합인들 스스로 먼저 힙합의 미학과 매력이 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힙합인들이 감행한 반박 대부분은 ‘힙합도 만들기 어려운 음악이다!’내지는 ‘힙합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다!’정도였다(잘못된 자매품으로는 '힙합도 예술이다!’가 있다). 힙합에 대한 뜨거운 애정은 충분히 동감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힙합에 대한 외부의 선입관, 혹은 편견이 더욱 견고해지는데 도움이 됐을 뿐이다. 힙합에 대한 인식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힙합은 만들기 쉬운 음악이 맞다. 그리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음악이다. 단지 잘 만든 힙합과 못 만든 힙합이 있을 뿐이다. 이 사실마저 부정하는 순간, 힙합에 대한 변론은 힘과 의미를 모두 잃게 된다. 또한,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힙합을 잘 모르거나, 힙합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가난한 아프리칸-아메리칸 형제들이 생일선물로 받은 드럼 머신 하나를 가지고 만들어낼 수 있던 음악이 힙합이고, 화성학이나 코드 등의 이론을 몰라도, 그리고 악기를 전혀 다룰 줄 몰라도 만들 수 있는 음악이 바로 힙합이다. 당장 힙합 뮤지션들이 쏟아내고 있는 많은 양의 결과물을 보라. 그만큼 창작에 대한 접근이 다소 쉬운 게 사실이다. 한마디로 발라드 음악을 만들던 뮤지션이 어느 날 갑자기 드럼으로 반복되는 비트를 찍고, 그 위에 피아노 연주를 살짝 얹어서 ‘여러분, 힙합 한 번 만들어봤습니다.’라고 해도 틀린 건 아니란 얘기다(우리 힙합인들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힙합이냐 아니냐를 따질 순 있겠지만). 화성학과 코드 등 기본적인 음악이론으로 무장하고, 멜로디 연주가 가능한 이들에게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해 뚝딱 만들어낼 수 있고, 그들의 말에 의하면, 기존에 발표된 곡을 대충 잘라 붙여서 만들어낸다는 힙합은 왠지 날로 먹는 음악처럼 비쳐질 것이다. 이렇게 힙합 자체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이들에게 ‘힙합도 되게 만들기 어렵거든! 그게 힙합의 다가 아니거든!’이라고 백날 외쳐봐야 씨가 먹히겠느냐 말이다. 왜 만들기 어려운가, 왜 그게 힙합의 다가 아닌가를 설명해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우선 겉으로 드러나는 음악이 완성되기까지 공정 자체가 타장르와 게임이 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극단적인 예로 무심코 MPC를 두들기다가 마음에 드는 비트가 찍히자 즉석에서 샘플을 얹어 1~20분 만에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게 힙합이라면, 화성과 코드를 신경 쓰며 기본적인 멜로디 라인을 짜놓고도 몇 번의 편곡을 거쳐 완성되는 게 멜로디와 보컬이 주가 되는 장르의 음악들이다. 물리적 시간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실제로 넵튠즈(Neptunes)는 무심결에 맘에 드는 드럼이 나오자 약 30분만에 명곡 “Grindin’”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힙합에서 창작은 기존 음악의 재창조, 혹은 재결합에서 출발했고, 그것을 가장 큰 미학 중 하나로 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힙합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이들이 가장 큰 공격무기로 삼는 게 바로 이 지점이고, 동시에 스스로 무지를 드러내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은 힙합의 음악적인 가치와 완성도는 물리적인 창작 시간과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모르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날 그 스펙트럼과 작법이 다양해지고 발전하긴 했지만, 힙합은 기본적으로 디깅(Digging)과 샘플링(Sampling), 그리고 루핑(Looping)의 음악이다. 창작자가 장르 불문한 수많은 음악을 찾아서 듣고, 그 중 일부를 재구성하여 단 몇 마디의 중독적인 반복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바로 힙합이었다. 물론, 이제는 음악이론을 비롯하여 악기 한두 개 정도는 기본으로 연주가 가능한 힙합 프로듀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힙합 고유의 특성과 뼈대는 여전하다. 디지털 기기만으로 근사한 바이올린 룹을 만들어냈던 르자(RZA)가 후에 바이올린 연주를 배운 것도, 약 2년 전쯤 [Detox]를 위해 드레(Dr.Dre)가 정식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것도 뮤지션으로서 욕심과 호기심이 앞선 것이었지, 기존 작법을 힙합의 한계로 여기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굳이 자신이 배우지 않아도 필요한 연주자를 고용하면 그만인 것이다). 활발하게 장르를 넘나드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와 윌아이엠(Will.I.Am) 역시 여전히 샘플링과 루핑의 미학을 든든한 무기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 힙합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오고 연구하지 않은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은 아무리 악기를 다루는 것에 능숙하고 음악 이론으로 충만하다 해도 힙합 특유의 소리의 질감을 구현하지 못하고, 샘플링 소스에서도 한계를 드러내며, 무엇보다 외국에서는 ‘도프(Dope)’하다고 표현하는 중독적인 루핑을 잘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힙합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아무나 만들 수는 없는 음악이다. 이 모든 요소가 결합하여 형성되는 고유의 그루브와 감흥은 단순히 비트를 찍어내는 기술적인 행위만으로는 구현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곡 단위로만 치자면, 전문 힙합 프로듀서가 아니더라도 어쩌다가 괜찮은 힙합 트랙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어느 장르나 그렇듯이 한두 곡을 만들어놓고 해당 음악을 논한다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나 다름없다(이건 힙합인들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힙합 자체와 프로듀서들에 대한 존중 없이 힙합을 논하고 만들고자 하는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도 문제지만, 힙합에 대한 막연한 애정과 부족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단 발끈하고 보는 힙합인들도 다시 한번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양쪽 모두 힙합에 대한 제대로 된 존중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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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 등록
  • 길심슨
    1. 길심슨 (2012-08-15 23:17:17 / 121.171.217.***)

      추천 0 | 비추 0

    2. 어떻게 만드냐보다 어떻게 들리냐가 중요하겠죠. 그리고 랩도 우리 말로 랩하는 건 영어로 하는 거보다 배로 어려우니..
  • Truble Makerz
    1. Truble Makerz (2011-05-18 17:46:25 / 175.19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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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좋은 글입니다.

      좋은 랩핑은 좋은 비트가 깔려야 나온다죠 .
  • 보리
    1. 보리 (2011-05-16 21:27:53 / 121.162.18.*)

      추천 0 | 비추 0

    2. 잘 읽고 갑니다 대단한 음악지식은 없고 혼자만의 확대해석일지 몰라도 미술로 치면 고전적 의미의 물감과 캔버스로 그린 그림에서 기존소재를 활용해서 재창조하는 현대아트(팝아트나 비디오아트 정크아트 등)와 맥락이 비슷하단 생각을 해왔습니다 ^^
  • 김영준
    1. 김영준 (2011-05-15 17:45:44 / 125.142.192.**)

      추천 0 | 비추 0

    2. 아무리 한국에서 힙합이 대중화 했어도 우리 아티스트들과 리스너 그리고 대중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힙합은 대중들에게 잘 다가가지 못할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글 잘봤습니다.
  • djyd
    1. djyd (2011-05-15 13:51:03 / 119.203.243.**)

      추천 0 | 비추 0

    2. 서두엔 욱하긴 했지만 마지막 6줄이 핵심이군요
      따스한 채찍
  • lefty
    1. lefty (2011-05-15 04:20:02 / 121.64.249.***)

      추천 0 | 비추 0

    2. 공감가는 알찬 글 감사합니다^^
  • 애사내
    1. 애사내 (2011-05-14 18:50:49 / 222.103.52.***)

      추천 0 | 비추 0

    2. 1 공감합니다. 리드머 편집장님의 의견에 랩에 대한 디스리스펙도 언급했으면 더욱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니면 랩에 관한 의견이 너무 많이 회자되어서 프로덕션에만 국한해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일 수도 있겠죠.)

      국내에서 랩을 '노래를 못해서' 하는거라고 착각을 하더군요. 몇 아이돌 그룹 내에서 보컬이 딸리면 '랩'으로 커버하려는 것 때문에 그런것 같기도 하구요. ('래퍼 < 싱어' 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듯...)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느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알찬 글 잘 보고 갑니다.
  • 김성환
    1. 김성환 (2011-05-14 16:56:54 / 118.221.245.***)

      추천 0 | 비추 0

    2. 여기서는 프로덕션 얘기만 하셨지만 랩과 노래의 관계에서도 국내에서는 랩이 노래보다 쉽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 외계소년
    1. 외계소년 (2011-05-14 13:57:33 / 175.197.17.***)

      추천 0 | 비추 0

    2. 일권님의 오랜 생각과 시각이 담긴 알찬 글이내요. 힙합과 흑인 음악..결국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공감가는 칼럼입니다. 음악은 다 같이 가는거지 따로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힙합은 우리나라의 비빔밥 문화와도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모든 장르를 포함할 수 있죠. 우리의 장단이 아프리카 음악과 어울리는 것도 그런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아직은 한국에서 힙합이 대중적이지 못하지만,, 앞으로 대중속에 금방 친숙해지리라 봅니다.

      리드머가 써나가는 글들이 그 토대를 마련하고 역사로 남을거라 확신하내요.
  • 스페르치
    1. 스페르치 (2011-05-14 01:29:09 / 175.118.82.***)

      추천 0 | 비추 0

    2. 딜라나 맫립과 재즈의 관계, 디앤젤로나 에리카 바두 같은 네오소울과 힙합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네요.
      D'Angelo는 알아도 Soulquarians는 모르는 경우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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