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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한국 힙합의 발자취 3부
리드머 작성 | 2009-10-20 17:41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0 | 스크랩스크랩 | 27,542 View

1172238519.jpg(3) 현재 미국 주류 음악 시장과 문화에서 힙합이 차지하는 영향력

1) 문화 전반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힙합

랩 음악이 빌보드 차트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힙합 뮤지션들은 빈민가에서 자수성가한 흑인으로서 게토의 롤 모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종을 초월하는 상품으로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밑바닥 인생에서 음악을 통해 거듭나 엄청난 부를 이룩한 백인 래퍼 에미넴(Eminem)이나 최근 이슈 메이커로 떠오른 피프티 센트(50Cent)는 일종의 문화적인 아이콘이 되었고 더불어 그들의 슬랭 가득한 언행이나 큼직한 힙합 패션은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은 물론 백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힙합은 이제 패션 산업에서도 중요한 시장이 되었으며 많은 브랜드들이 래퍼들과 계약을 맺고 나름의 홍보를 기획하는가 하면 뮤지션 본인이 투자에 뛰어들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패션 레이블을 차리기도 한다. 앨런 아이버슨(Allen Iverson) 이후 미 프로 농구 리그인 NBA를 통해서도 힙합은 문화와 패션은 물론 문신과 헤어스타일을 통해 대중적으로 더욱 널리 전파 되었다. 한편, 영화계에서도 힙합은 중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는데 꼭 에미넴의 <8 Mile>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윌 스미스(Will Smith)를 비롯해 아이스 큐브, 디엠엑스(DMX)같은 인기 래퍼들의 영화계 진출은 흔한 일이 되었으며 영화의 O.S.T.가 힙합 음악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많다.

2) 지역적 음악색이 뚜렷한 독특한 캐릭터의 랩

힙합 음악이 가지는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각 지역마다 나름의 음악적 색깔이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이다. 뉴욕을 위시한 동부의 재즈와 소울에 기반을 둔 묵직하고 단단한 질감의 사운드와 LA로 대표되는 서부 연안의 나긋나긋한 베이스 라인의 선율이 강조되는 지-훵크 사운드에서 예를 들 수 있다. 또한 마이애미 베이스(Miami Bass)나 드럼 앤 베이스(Drum 'n Bass)c 등에서 영향을 받은 남부 계열의 마이애미, 휴스턴, 애틀란타 같은 도시들도 나름대로의 음악적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근래에 접어들면서 팀발랜드(Timbaland)나 넵튠스(Neptunes)등의 마이크로 싱코페이션(Micro Syncopation) 비트d에 기반한 디지털 훵크(Digital Funk)의 강세로 각 지역의 대표적인 뮤지션들이 주류적인 취향에 편입되면서 예전보다는 지역적 음악색이 많이 중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들어 더욱 과거 지향적이고 간결한 구성으로 진화한 서던 랩이 제2의 도약기를 맞아 다시금 그 차이를 뚜렷이 하고 있다. 하지만 서던 랩의 강세가 거세질수록 사색과 반성이 거세된, 마초적인 허세와 핌프(Pimp)로서의 자기과시에 충만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영향도 나날이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적인 음악으로 연이어 호평 받아온 아웃캐스트(Outkast)나 흑인 고전 음악에 바탕을 둔 진지한 재해석으로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한 제이 지나 카니에 웨스트(Kanye West), 커먼(Common) 등은 주류 랩씬에서 음악성과 상업성의 절충점을 찾아낸 선구자들로 호평 받고 있다.

3)언더그라운드의 급부상

거대한 주류 음악 씬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언더그라운드 씬이라는 그림자가 필요한데 힙합 음악이 메인스트림에서 성공하고 그 힘을 공고히 한 데에는 언더그라운드에서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성과가 어느 정도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Do It Yourself" 정신을 바탕으로 돈보다는 음악적인 열정이 우선시되는 언더그라운드 씬에서는 주류 랩 씬에서는 시도하기 힘든 극단적인 음악적 실험이나 사운드의 근원을 향한 진지한 성찰이 가능하다. 초기 재즈와 소울에 천착하며 개인적인 자아 반성과 주류 씬에 대한 반론을 구사하던 언더그라운드 힙합은 90년대 초중반 다양한 음악적 집단 혹은 크루(Crew)들이 등장하면서 일종의 전환기를 맞게 되는데, 모스 데프(Mos Def)와 탈립 콸리(Talib Kweli)에 이르는 ‘네이티브 텅(Native Tongue)'e 같은 진보적인 집단에서부터 D.I.T.C.같은 갱스터 멘탈리티를 지향하는 집단까지 다양하게 등장하여 인기를 모았다. 특히 컴퍼니 플로우 (Company Flow)의 멤버 엘-피(El-P)가 설립한 데피니티브 적스(Definitive Jux) 레이블의 실험성 강한 음악이나 베이 에에리어(Bay-Area) 지역의 턴테이블리즘과의 적극적인 결합을 통한 대안적인 힙합은 메인스트림 힙합에 식상해하던 팬들에게 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미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적극적인 도전 정신, 음악에 대한 진지한 자세 등은 국내의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국내 힙합의 성장에도 많은 모티브를 제공했다.

4) 미국 음악계를 장악하기 시작한 첨단의 힙합 음악

국내의 외국음악 청자 층은 아직 록과 팝에 경도되어 있지만 몇 년 전부터 빌보드 차트에서 랩 음악이 강세를 누리고 팝 음악과의 결합이 좀 더 가속화되면서 국내에도 서서히 랩 음악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초기 유입되던 랩 음반들은 소수의 마니아층을 통해서만 구매되었지만 국내 가요계에도 점차 힙합 뮤지션이 많아지고 또한 미국 팝계에서 랩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해마다 증가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내 음반시장에서도 힙합 음반이 나름대로 활발히 거래되기 시작했다. 또한 CF나 모바일 시장에서도 랩 음악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더불어 에미넴이 미국에서 정상의 위치에 오르자 국내에서도 반항적인 아이돌의 형태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뒤이어 어셔(Usher)나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등 미국에서 힙합 음악을 도입하는 스타 뮤지션이 증가하면서 그들의 음악과 패션이 동시에 주목을 끌었다. 이에 따라 점차 국내 대중 음악계의 스타들이 그들을 벤치마킹하면서 미국 주류 힙합 음악에 대한 국내 음악 팬들의 관심 또한 높아졌다. 게다가 시기적절하게 국내에서도 나이트클럽의 대안적인 유흥 공간으로써 생겨난 힙합 클럽이 점차 활성화됨에 따라 기존의 힙합에 대한 반항적이고 사회비판적인 고정관념은 ‘좀 더 즐기기 쉬운 문화’로 그 의미가 바뀌어가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그 입지가 점점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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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 힙합음악의 발자취

앞서 우리는 힙합 음악이 국내 대중가요의 주류로 신속히 입성하게 된 사전 배경으로써 미국 힙합 음악의 개략적인 역사와 현재 미국 내에서 힙합 음악과 문화가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럼 힙합음악이 국내 대중가요의 한 장르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고찰에 앞서 우선 그 상위개념인 문화로서의 힙합이 어떻게 이식 되었는가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오늘날 힙합이라는 단어가 대중문화의 키워드라는 점은 미국과 우리의 그것이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960년대 빠른 속도로 성장했던 흑인 민권운동의 과정에서 파생된 그들의 하위문화를 바탕으로, 8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 내 흑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으로 대변되던 미국의 힙합 문화는 최초 음악적 측면과 외형적 측면으로만 새로운 시도를 하려던 국내 대중가수들에 의해 그 본질적인 면은 뒤로 밀려난 채 표면적인 부분만 이식되었다. 즉, 음악을 포함한 흑인들의 삶과 철학 전반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로써의 힙합이 아닌, 단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춤을 추거나 랩을 통해 자유를 외치는 것이 곧 힙합이라는 잘못된 형태로 그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국내에 힙합이 처음 소개된 후 힙합은 하나의 독립된 문화로 인정받기 보다는 청소년층이 기성세대에게 보내는 치기 어린 투정내지는 한 때의 유행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힙합 문화의 범주 안에서도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힙합 음악의 유입 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이라는 이유와 미국 본토 힙합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공격성 때문에 제대로 된 힙합음반을 접할 수 없었던 국내의 대중들은 일부 대중가수들이 그때그때 입맛에 맞춰서 변형시킨 음악을 진짜 힙합으로 알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힙합이 품고 있는 여러 성질의 일부인 자유와 반항의 이미지를 마치 힙합의 전부인 양 부각시키며 힙합음악이 상업적 용도로 쓰이는 것을 부추긴 대중매체들은 힙합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는 데 크게 한 몫 했다. 원류가 되는 미국 힙합 문화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무시한 채 성급히 행해진 힙합의 한국화는 주체적 수용이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 어설픈 흉내 내기밖에는 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힙합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을 상당히 늦추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힙합음악의 발자취에 대해 시기 별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1) 한국 힙합 음악 수용의 방식

우선 항상 논란이 되어온 한국 최초의 랩에 대한 것부터 명확히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 부분은 과연 ‘랩’이라는 것을 어느 범위에서 인정할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라임-흔히 각운과 두운 등을 이용한-을 랩의 필수 요소로 전제하고 글을 전개해 나감을 밝힌다. 한국 최초의 랩이 무엇이냐를 논할 때면, 대부분 두 곡을 기점으로 의견이 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홍서범의 ‘김삿갓’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그것이다. 지금까지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한국 최초의 랩이라 평하는 것을 많은 이가 당연시 여겨왔지만, 점점 힙합음악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불어나면서 서태지 이전에 국내에서 랩을 시도했던 이들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바로 홍서범이 서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신해철, 이현우, 015B, 김건모 등이 존재하지만, 신해철의 ‘안녕’과 이현우의 ‘꿈’은 영어로 된 랩이었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고 015B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라임의 부재와 플로우라고 하기에는 다소 모호한 보컬의 전개 등 랩보다는 나래이션에 가깝다. 또한,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역시 라임의 부재 때문에 엄밀히 따져서 제대로 된 랩이라 부르기에는 모호한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 홍서범의 존재는 다시 평가를 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가 1989년에 발표했던 1집 수록곡 ‘김삿갓’은 비록 매 구절마다는 아니지만, 각운과 음수율을 이용하여 라임과 플로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가끔씩 보이는 라임이 오늘날 시점에서 보자면 너무 단순하기는 하지만, 미국 최초의 랩이라 일컬어지는 슈거힐 갱의 "Rapper's Delight"도 지금에 와서 보면 꽤 단순한 라임으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당시 가요계가 아직 랩이라는 장르의 존재조차 생소했던 시기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홍서범의 시도는 가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심지어 이 곡의 비트는 힙합과 다소 거리가 멀었던 서태지의 곡에 비하면 훨씬 미국 본토의 올드스쿨 힙합에 가깝게 다가서 있다. 더구나 후렴구 역시 반복되는 단어의 매칭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며 랩의 형식을 그대로 갖추고 있어 한국 랩의 효시라 부르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옛날 TV 쇼 프로그램에서 그가 종종 반 우수개소리로 외치던 “제가 랩의 원조에요.”라는 말을 이제는 코미디가 아닌 정극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이쯤 되면 항상 제기되는 의문점이 있다. 그렇다면, 고 서영춘 선생의 “서울구경”과 서수남, 하청일의 “팔도유람”은? 혹자들은 가끔씩 고 서영춘 선생의 곡을 한국 최초의 랩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펼치기도 하는데, 이 두 곡은 ‘최초의 랩’ 논란에 포함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라임에 대한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단지 기존 보컬 형식에서만 벗어나 있을 뿐 애초에 랩과는 거리가 먼 곡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2년 발표된 서수남, 하청일의 “팔도유람”은 컨트리 가수였던 행크 스노우(Hank Snow)가 미국 유람기를 소재로 만든 곡 “I've Been Everywhere"에서 보컬과 가사 컨셉을 99% 그대로 빌려온 리메이크였기 때문에 논의에서는 제외시키는 것이 옳다. 하지만, 고 서영춘 선생이 1960년대 발표했던 ”서울구경“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 랩의 모태가 되는 음악으로써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모태’라는 표현을 ‘최초’라는 말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미국 힙합의 역사를 논할 때면 항상 랩의 모태로 거론되는 캡 칼로웨이의 ”Minnie The Moocher" 처럼 말이다. 

1) 도입기(1992~1995) : 댄스음악을 통한 절반의 수용

① 힙합 음악의 변형된 형태, 랩 댄스의 등장

미국 흑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힙합 음악은 90년대 초반 댄스 음악에 랩이 가미되는 이른바 랩 댄스라는 변형된 형태로 국내 가요계에 그 첫 모습을 드러낸다. 당시 신해철과 이현우 같은 가수들이 각각 ‘안녕’과 ‘꿈’이라는 곡을 통해 영어 랩을 선보이긴 했지만, 랩을 전면에 부각시키며 본격적으로 힙합 음악을 대중에게 알린 것은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과 현진영, 그리고 듀스(Deux)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곡의 8할 정도를 랩으로 채운 ‘난 알아요’라는 곡으로 기존의 가요에만 길들여져 있던 음악계와 수많은 대중을 당황케 했다. 이 곡의 등장이 국내 가요계에 얼마나 큰 충격을 안겼는지는 1992년 이들이 출연했던 MBC TV의 [특종 TV 연예]라는 프로그램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한 코너에 출연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심사위원들의 혹평 속에 역대 출연자들 중 최하위의 점수를 받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같은 해 미국에서는 두 명의 꼬마 래퍼들로 이루어진 크리스 크로스(Kris Kross)의 ‘Jump'라는 힙합 음악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는 점과 비교해본다면 당시 국내 음악계에서 랩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생소한 음악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신선한 면이 있으니 성장할 가능성은 있는” 정도로만 치부됐던 이들의 음악은 10대들의 전폭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며 자신들의 존재 가치와 더불어 랩이라는 장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순식간에 반전시켜버렸고, 데뷔곡이었던 '난 알아요'는 제대로 된 랩의 시초로 국내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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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랩 댄스와 힙합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한편,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듀오 듀스는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더 미국 힙합음악에 가까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타이틀곡이었던 '나를 돌아봐'를 비롯하여 랩에 큰 비중을 둔 '알고 있었어'와 '매일 항상 언제나' 같은 트랙은 비록 완벽하진 못 했지만 보다 힙합음악에 충실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곡들이었고 해당 곡들이 담겨있던 데뷔작을 통해 이들은 대중의 주목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발표했던 두 번째 앨범 [Deuxism]에서 이들은 더욱 진보한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스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이처럼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듀스로 이어지는 성공은 발라드와 록 음악만이 전부였던 국내 대중들의 입에서 힙합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흘러나오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동시에 랩과 힙합을 앞세운 가수들이 가요계에 등장하게 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데뷔시기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보다 빨랐지만 뒤늦게 주목을 받았던 현진영 역시 국내 대중음악 씬에 힙합음악을 전파하고자 한 1세대로서 92년 앨범이었던 [New Dance]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성공의 단맛을 보게 되는데, 이보다 앞서 90년도에 발표했던 ‘슬픈 마네킹’은 그 구성면에서 힙합음악 작법에 충실한 최초의 음악으로 평가할 만하다. 또한, 다른 곡이었던 ‘현진영 Go, 진영 Go’에서는 단순하긴 하지만 라임을 갖춘 후렴구를 선보이며 보다 더 미국 본토의 힙합 음악에 다가가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당시 우리가 힙합이라 부르던 음악들은 엄밀히 따져서 완전한 힙합음악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서태지와 아이들, 현진영, 듀스를 비롯한 그때의 몇몇 가수들의 음악은 힙합음악의 형식을 빌리고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힙합이라고 말하기에는 여러모로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멜로디에 민감한 국내 대중의 입맛을 끌기 위해 보컬라인의 삽입과 적당히 멜로디가 있는 유럽의 하우스 음악이나 테크노 음악의 부분적인 차용이 부득이했는데, 현재까지도 국내 힙합음악의 역사 속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의 경우만 하더라도 힙합, 메탈, 테크노 음악 스타일을 부분적으로 차용한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음악이지 멜로디와 보컬의 비중을 극히 배제하고 베이스와 비트를 강조하던 당시의 원래 힙합음악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오히려 서태지의 음악은 유럽의 랩댄스 음악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듀스나 현진영의 음악 또한 랩이 갖는 본연의 매력보다는 멜로디와 보컬의 영향력이 더 컸다는 점에서 테디 라일리(Teddy Riley)나 키스 스웻(Keith Sweat) 등이 추구했던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f 에 가까운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③ 미국 힙합 문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되었던 갱스터 랩 해프닝

한국 힙합 도입기의 막바지라고 할 수 있는 95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으로 인해 갱스터 랩(Gangsta Rap) 열풍이라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최초 미국의 실제 갱단 출신의 래퍼들이 랩을 했다는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인 갱스터 랩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의 가사를 앞세워 그네들의 문화를 표현해 내던 음악이었다. 그런데 이를 많은 이가 ‘어둡고 거친 분위기의 비트가 담긴 음악이 곧 갱스터랩’이라고 잘못 받아들인 까닭에 당시 랩을 한다는 가수들이 너도나도 갱스터랩을 표방하며 나오기 시작했다. 갱스터랩이라는 장르를 구분 짓는 것은 그 랩의 주체가 누구인가와 가사적 컨셉이고 비트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도구였음에도 이를 알지 못한 당시 국내의 많은 뮤지션과 매체는 단지 음악적인 부분, 그것도 아주 일부분만을 갱스터랩의 모든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가요계에서 발라드 음악으로 제일 유명했던 모 작곡가의 경우는 공중파 방송 연예프로그램에서 갱스터랩을 추구하는 그룹을 키우고 있다는 무지한 발언까지 했을 정도였다. 결국, 문화적 차이는 물론이거니와 그 의미에서부터 국내에서는 탄생자체가 불가능했음에도 해당 장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몇몇 뮤지션들에 의해 국내의 대중음악계는 또 한 차례 잘못된 힙합 문화의 열병을 앓아야만 했던 것이다.  

4부에서 계속

※참고

미국의 문화 평론가 마이클 에릭다이슨은 앨런 아이버슨을 ‘점프슛을 하는 투팍’으로 지칭했다. 아이버슨은 백인관중 위주의 NBA를 힙합으로 장악한 장본인이며 그 어떤 래퍼들보다도 현대의 힙합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b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가 솔소닉 포스(Soulsonic Force)와 함께 발표했던 [Planet Rock:The Album]에서 소개한 E-Funk(Electro Funk)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장르로서 신시사이저와 드럼머신으로 만들어진 매우 빠른 비트의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다.

c 영국에서 시작된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의 하위 장르로서 오로지 빠른 드럼머신과 깊은 베이스만으로 곡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브레이크 비트(Break Beat), 레게(reggae), 덥(dub) 그리고 R&B 등과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며 재즈(Jazz)와의 접목도 두드러진다. 정글(Jungle)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알려져 있으며 마이애미 베이스와 마찬가지로 역동적이면서 춤추기에 좋은 음악이다.

d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 팀발랜드(Timbaland)가 창조한 비트로 현 메인스트림 힙합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음악스타일이다. 세밀하게 쪼개진 드럼과 전자음을 결합시킨 이 독특한 스타일은 기존의 힙합 음악의 체계를 뒤흔들며 '음악'이라기보다 일종의 디지털 '과학'으로까지 평가하는 무리가 생겨날 정도로 존경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e  De La Soul, ATCQ, Brand Nubian, Bush Babees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거리에 대한 거친 삶을 읊어대거나 파티를 위한 찬가를 불러대던 힙합의 전형적인 모델을 벗어나 흑인의 뿌리와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사회, 문화, 정치까지 아우르는 의식 있고 진중한 가사를 특성으로 하는 집단이다. 현재는 Common, Talib Kweli, Mos Def 등이 2세대 네이티브 텅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뉴 잭 스윙은 기존의 리듬앤블루스에 힙합을 도입하여 느린 템포의 노래에서도 흥겨움을 주는 음악이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의 리듬앤블루스 음악인들은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는 반면, 힙합을 즐기는 주위의 환경에서 자라났다. 따라서 뉴 잭 스윙이 유행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키스 스웨트(Keith Sweat)와 테디 라일리(Teddy Riley)가 뉴 잭 스윙을 크게 융성하게 한 장본인들이다.
 
 
기사작성 / RHYTHMER.NET 강일권, 김봉현, 염정봉, 예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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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
    1. ㅋㅋㅋ (2009-10-25 22:06:56 / 58.142.83.*)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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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거 4부는 언제 나오나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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