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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하이 - 힙합을 사랑하지만, 음악은 힙합보다 위대하다
리드머 작성 | 2009-10-26 22:32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 | 스크랩스크랩 | 17,255 View

1379591453.jpg네 번째 앨범 [Remapping the Human Soul]을 발표하고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그룹 에픽하이를 만나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누어보았다. 나름대로 우여곡절(?)이 있었던 인터뷰라 더욱 애착이 가기도 한다나 뭐라나. 신보에 담겨진 음악,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 대한 에픽하이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말들에 귀 기울여 보자.

리드머(이하 ‘리’)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문득 예전에 타블로씨가 언더그라운드EP 관련해서 리드머스튜디오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그 글을 보고서 ‘에픽하이도 리드머를 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웃음).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언더그라운드EP는 언제 나오나요?

타블로(이하 ‘타’) : 으하하...그건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일단 제 음악적 취향이 계속 바뀌는 중이에요. 언더그라운드EP를 만들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에픽하이 4집을 만들자고 우리끼리 얘기가 됐어요. 사실 “Nocturne”같은 곡은 언더그라운드EP에 수록하려고 만들었던 곡이었는데 이번 앨범 첫 번째 시디의 성격상 거기에 들어가도 될 것 같아서 수록하게 된 것이거든요. 그니까 일단 EP작업을 중단하고 에픽하이 앨범을 다 만든 후에 EP 작업을 재개하려고 했었는데.......제 음악적 취향이 지금 또 달라졌어요. 그래서 만약 제가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내게 된다면 거기에 어떤 유의 음악을 담을 건지 아직 결정을 못한 상태에요. 집에서 계속 작업하다가 ‘이런 유의 음악으로 하자’는 걸 결정하게 되면 그때 하려구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낼 수는 있는데, 약속을 했기 때문에 내야한다는 그런 부담감은 갖기가 싫어요.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안낼 수도 있는 거고.......(투컷에게) 그렇잖아...?

투컷(이하 ‘투’) : 아니, 커밍순을 두 번이나 질러놓고 지금.......

타 : (웃음) 아니 언젠가는 할 거에요. 그런데 지금 당장은 모르겠어요. 뭐 이러다가 다음달에 나올 수도 있는 거고.......아, 그리고 리드머 스튜디오의 비트메이커 분들, 제가 도저히 연락할 방법이 없어요!

리 : 안 그래도 “Nocturne”을 듣고서 ‘이게 원래 언더그라운드EP 수록곡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맞군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앨범 타이틀이 [Remapping The Human Soul]인데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타 : 1집 때는 저희가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냥 꿈과 열정만 잔뜩 있었고 한창 어렸죠. 그때 제가 22살이었나 그랬고, 미쓰라는 19살, 투컷은 21살이었으니까요. 아직 세상도 잘 모르면서 열정과 반항심으로 만든 음악이었죠. 그런데 앨범을 계속 내고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때 그렸던 지도는 미완성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지도를 그려본 거죠. 어떻게 보면 저희가 음악적으로 성숙한 첫 번째 앨범인 것 같아요.

리: 앨범이 2장으로 나왔는데요. 저는 이걸 보고서 2가지를 떠올렸습니다. 일단 편리하게 구분해서 한 장은 힙합이고 한 장은 힙합이 아니라고 해볼게요. 첫 번째는 ‘자신감’인데, 타블로씨가 주로 만드신 두 번째 시디에 담긴 음악들이 첫 번째 시디에 담긴 음악들의 보조를 이루는 형태가 아니라 수적으로 대등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한 장의 완성된 음반으로 내놓을 만큼 우리는 이런 음악에도 자신이 있다’고 외치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구요. 두 번째는 ‘열정’인데, 음악의 완성도를 떠나서 요즘 같은 불황에 두 장으로 앨범을 낸다는 시도 자체가 ‘음악을 향한 상당한 열정’으로 비쳐졌습니다. ‘적당히 괜찮은 앨범 만들어서 적당히 방송 활동하는’ 마인드가 아니라 뭔가 음악으로 승부하려는 뮤지션쉽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에픽하이(이하 ‘에’) : 네, 맞죠. 이미 답변을 다 말씀해주신 것 같은데요(웃음).

리 : 아, 그런가요? 제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거라.......

투 : 타이틀곡 하나 좋은 거 만들고 나머지는 대충 채워 넣고 방송하고 행사하고 이러려고 앨범을 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지난 앨범들도 다 마찬가지였구요. 곡수가 많아진 이유는 계속 작업을 하면서 괜찮은 것들이 많이 나왔는데 시디 한 장에 다 안들어가길래.......

리 : 작업한 곡들이 얼마나 되죠?

타 : 한 200곡은 만들었을 거예요. 컴퓨터에 남은 곡들이 많아요. 사실 저희가 상업적인 마음을 가지면 지금 우려먹을 건 되게 많아요(웃음). 근데 나중에 사용하고픈 유혹이 있을까봐 앨범에 실리지 않은 대부분의 곡들은 다 지웠어요. 다음에 할 때는 새롭게 시작해야죠. 200곡 중에서 47곡 정도를 녹음했고, 그중에서 27곡을 추렸어요. 1년 동안 계속 작업만 했던 것 같아요. 특별히 하루에 몇 곡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고, 그냥 하루 종일 했어요. 멤버 세 명이 같은 빌딩에 살아서, 각자 작업하다가 밥 먹을 때는 모여서 같이 밥 먹고, 다시 가서 작업하고 뭐 그랬죠. 작업하다가 투컷 방에 가 보면 몇 곡 나와 있고, 미쓰라 방에 가 보면 또 몇 곡 새로 나와 있고 뭐 이런 식이었어요. 머리도 안 감고 그냥 하루 종일 작업만 하는...뭐랄까 저희가 바라던 음악 오타쿠 같은 생활이었다고 할까나(웃음).   

리 : 와, 200곡 엄청나군요. 나중에 미발표곡만 묶어서 믹스테입 형식으로 발표해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외국은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는 이런 작업물들이 참 흥미를 주기도 하고요.

투 : 그런데 저희가 이번 앨범에 수록된 곡 외의 곡들은 하드에서 다 날려버렸어요.

리 : 아니, 아깝게 왜...

투 : 그 곡들을 그냥 가지고 있을 경우, 나중에 새 앨범을 작업하는데 만약,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생기게되면 보관했던 곡들을 끼워넣기할 수도 있는 유혹이 있을까봐요. 그래서 과감하게 나머지 곡들은 다 지워버렸죠.

리 : 아... 그렇군요. 여하튼 이번 앨범에 대한 평들이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저의 한 지인은 이번 앨범을 두고 ‘에픽하이의 창작력이 만개한, 그들의 전성기를 증명해주는 앨범’이라는 말까지 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타 : 그렇게 봐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그런데 저희가 만든 200여개의 곡 중에 사실 들려드리기 창피한 곡들도 많았어요. 작업만 하면 바로 좋은 곡이 나오고 그런 게 아니었죠. ‘트라이얼’과 ‘에러’의 연속인 것 같아요. 해봤다가 안 되고 다시 해보고 이런 과정의 반복이었죠. 저희의 창작력 수준이 올라간 것이라기보다는 그만큼 노력을 했던 결과인 것 같네요.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살짝 부담도 되고, 자신을 괴롭히게 될 것 같아요. ‘이제 항상 이거보다 잘 해야 되는구나’ 이런 생각들 있잖아요. 그냥 저희가 계속 열심히 하다 보니까 좋은 곡이 나오는 거지 저희가 좋은 곡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리 : 소위 말하는 ‘대중성’과 ‘음악성’ 사이에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에픽하이라는 팀에게는 특히 더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투 : 음.......대중과 마니아라는 기준을 두고 만든 음반이 아니에요. 저희는 원래 누구를 기준으로 두고 음반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의도’가 들어 있는 음반이에요. 그 당시 저희가 하고 싶었던 얘기랑 만들고 싶었던 음악이 그냥 담겨 있는 음반이죠.

미쓰라 (이하 ‘미’) : 그런 특별한 의도라는 것 자체가 음반에 들어가면 좋은 음악이 나올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만약에 음악을 향한 순수한 의도가 아닌 어떠한 불순한 의도가 담겼다면 그 음악 자체가 좋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앨범에 실리지가 않았겠죠.

타 : 물론 곡을 만들고 난 후에는 ‘이 곡이 대중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판단은 들어요. 만들고 보니까 ‘이건 좀 대중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러한 느낌 때문에 완성된 결과물을 바꾸지는 않았어요. 그냥 결과물에 충실했고, 결과물까지 가는 길에는 음악적 의도 외에 다른 의도는 없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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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 앨범 전반에 아기자기한 장치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FAN”이란 곡 제목에 담긴 중의적 의미도 그렇고, “선곡표”의 가사, “행복합니다”의 마지막 부분 등은 이미 화제가 된 바 있구요. 개인적으로는 음악적으로 크게 무리가 없다면 음악에 대한 재미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면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 좀 부탁드릴게요.

타 : 의도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요. “선곡표”는 2집 작업할 때부터 해보고 싶었던 거구요.......

돌                발                상                황 !!
(인 터뷰는 목동 SBS방송국 1층 커피숍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한 직원 분의 난입으로 인터뷰는 와해 직전에 몰리게 되었고, 결국 궁지에 몰린 우리는 에픽하이의 밴으로 이동해 마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분에게 스펙터클한 인터뷰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립니다. Thank U, Sir).

리 : 자, 다시 시작해보지요.

타 : 네. “행복합니다”는 당연히 의도한 거구요. 그걸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얘기하면 뭐 딱 봐도 티가 나니까(웃음).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가 겹쳐서 새로운 세 번째 이야기가 나온다는 의미로 해봤어요. 사람들이 대화할 때, 혹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들리지 않는 공간들에 진심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사람이 항상 웃고 있으면 그 사람의 슬픔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자세히 귀기울여보면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 들린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일상적이고 뻔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을 들을 수가 없는 거지, 귀를 기울이면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 외의 뭔가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거죠. “선곡표”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해본거구요.

리 : 다른 매체의 기사에서 타블로씨가 ‘스스로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 그들의 고통을 함께 하지는 못해도 이해는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씀하신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메시지는 “알고 보니”, “실어증”, “Still Life”, “Girl Rock”, “행복합니다” 등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앨범의 상당 부분을 이와 같은 얘기들로 채우신 특별한 계기라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타 : 특별히 이번 앨범에서 그랬다기보다는 저희 자체가 원래 그런 마인드였던 것 같아요.

미 : 1집때 “그녀가 불쌍해”도 그런 내용이었죠.

타 : 네. 굳이 꼭 그들을 대변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저희의 감성 자체가 살짝 'Loser'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미 : 1, 2, 3집 때도 그런 얘기들이 좀 있었는데 이번 앨범에서 조금 더 많아진 거죠. 트랙 수가 늘어나면서 그랬을 수도 있고, 이번 앨범 작업할 때 그 감성이 더 드러나서 그런 걸 수도 있구요. 앨범 작업할 때의 감성이나 정신상태에서 앨범이 완성되는 거니까요. 저희가 특별히 의도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때의 감성이 그랬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네요.

타 : 그런데 그 감성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그 루저 감성을 음악에 표현하려고 하는데 정작 음악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루저가 아닌 걸 느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게 좀 인위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어요. 사실 저희는 겉으로 보이는 면보다 루저스러운 면이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면서 인종차별을 많이 받았고, 체구가 작으니까 싸움도 못하고...그냥 책 좋아하고 문학 좋아하는 애였어요. 학교에서 인기가 많았던 적이 거의 없어요. 고등학교 때도 제가 불량하게 놀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절 멀리했어요. 집에서도 어릴 때 저를 보고 ‘얘가 바보가 아닌가’ 할 정도로 제가 적응을 잘 못했어요(웃음). 그 감성이 아직 제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미 : 저는 원래 안 그랬는데 중학교 때부터 혼자 놀기 시작해서, 사람을 대하는 게 굉장히 힘들더라구요. 마주보고 얘기하는 게 힘들고, 눈 마주치는 것도 그렇고(웃음).

리 : 어떤 기사를 보니 ‘우리는 다른 장르도 잘하는 힙합 그룹이 아니라, 힙합도 잘하는 다른 장르의 그룹이다’라고 하셨는데,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에픽하이의 음악적 무게중심이 힙합에서 힙합 바깥으로 옮겨졌다고 해석해도 무방한 건지요.

타 : 네. 그런 것 같아요. 물론 그동안의 앨범에 힙합적인 곡들도 많았지만 2집의 “평화의 날”, 3집의 “Fly”, 이번 “FAN”같은 곡들은 누가 들어도 힙합이 아니잖아요. 사실 뭐랄까, 이제는 그런 면에 대해서는 저희를 좀 놓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니네 하고 싶은 거 하라’구요(웃음). 이게 힙합이냐 아니냐 뭐 이런 질문들 있잖아요.

리 : 그런데 에픽하이 분들께서 방송에 많이 나오시고 하면서, 힙합의 저변 확대를 기대하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타 : 아, 힙합에 대한 사랑은 절대 장난이 아니에요. 저희 앨범의 반은 분명히 힙합이구요.  리스너로서 저희의 음악 사랑의 중심은 여전히 힙합입니다. 저희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기 이전에 음악을 듣는 사람이기 때문에 힙합과 랩을 너무 좋아하고 또 문화적인 면도 좋아하지만, 저희가 그 문화를 100% 반영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사실 사람이 살면서 ‘나는 힙합이고, 힙합 외의 것들은 내가 아니다’라고 구분을 짓고 살 수가 없잖아요. 저는 락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것과 삶의 방식을 흑백으로 나눌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미 : 이런 것도 있어요. 저희는 힙합 외의 다른 시도도 해보고 싶은데, 언론에서 저희를 두고 ‘힙합계의 선두주자’ 뭐 이런 식으로 자꾸 나누려고 하니까 본의 아니게 힙합만 하시는 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저희가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이번 앨범도 어쩌면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르구요.

리 : 바비킴 씨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뿐인데 자꾸 수식어는 ‘힙합의 대부’ 이런 식으로 나가니까.......

타 : 바비형이랑 저희는 예전부터 그런 대화를 많이 나눠왔어요. 바비형은 저희가 하고 싶은 게 음악이라는 어떠한 범대한 틀이지 힙합만이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죠. 바비형도 선배로서 ‘너희가 힙합을 하지 않음으로서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다면 힙합이라는 수식어와 틀에 구속받지 말라’고 얘기해주곤 하세요. 어차피 힙합보다 위대한 게 음악이고, 락보다 위대한 게 음악이잖아요. 음악이 제일 중요한거죠. 댄스, 트로트, 힙합이 있다고 봤을 때 트로트에서 가장 뛰어난 곡이 단지 트로트라는 이유만으로 힙합에서 가장 뛰어난 곡보다 덜 한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역시 아니구요. 물론 그와 동시에 장르도 중요하고 힙합이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요. 왜냐하면 저희가 힙합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물론 버리고 싶지도 않지만, 랩이라는 게 전달력과 표현력의 측면에서 뛰어나기 때문이에요. 랩은 계속 발전해야하고, 음악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랩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요. 갑자기 저희가 All Song으로 나온다던가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웃음).

리 : 개인적으로는 ‘변했다. 다른 음악을 한다’는 명제 자체가 해당 뮤지션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핵심은 ‘어떻게 변했나. 다른 음악을 잘하느냐 못하느냐’ 여부겠죠. 그런 의미에서 ‘힙합이든 힙합이 아니든 어떤 음악을 하든 에픽하이의 음악은 이래서 좋은 음악이다’라는 걸 스스로 밝혀주신다면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타 : 최선을 다했으니까 좋은 음악인 것 같아요. 음악의 질을 저희가 결정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중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평론가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구요. 정말 느낌과 마음과 혼을 담아서 만든 곡을 누군가 혼을 담아서 들을 수 있다면 그 연결 자체가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좋은 음악을 만든 건지, 좋은 음악을 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구요. 다만 음악이 해야 할 역할을 음악이 하고 있을 때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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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 “FAQ”를 꽤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사가 말 그대로 ‘그래, 너희는 계속 욕해라. 우리는 신경 안 쓴다.’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점인데요. 굳이 대응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해명하시지 않은 건지 아니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타 : 해명할 수가 없는 게, 사실이 아닌 것들도 많고, 그냥 헛소리인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해명할 방법이 없어요.

투 : 해명을 하려면 일일이 다 말을 해야 되잖아요. 한 두 개도 아니고.

타 : 그런 논란들을 우리가 스스로 다시 세상에 말하면서 사실 저희도 아프죠. 그런데 그렇게 함으로서 스스로도 생각해보는 거구요. 예를 들어서 ‘타블로, 인간이 좀 그래.’라는 말이 있다고 치면, 일단 그 사람이 저에 대해서 아는 것도 아니구요. 그렇다고 제가 ‘저 안그래요.’라고 얘기하는 걸 바라지도 않을 거라는 거죠. 그냥 욕하려고 욕하는 거기 때문에 ‘그래, 그럼 우리도 우리 욕할게’ 이렇게 되는 거죠.

리 : 스스로 그러한 논란을 입에 담으셨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그것들에 대해 떳떳하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도 될까요.

타 : 그냥, 재밌잖아요(웃음). 솔직히 말해서 다 재밌어서 하는 거잖아요. 상대방이 받을 상처 같은 건 아예 생각도 안하니까. 뭐 그게 상당히 안 좋은 거긴 하지만, 재밌어서 우리 욕을 하는 거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재미로 욕을 해야겠다, 대신 우리가 욕할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우리를 욕하는 거죠. 재밌잖아요.

리 : 이건 좀 민감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요. 티브이 출연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티브이 출연 아무리 많이 해도 음악이 좋다면 별 상관은 없다고 보는 입장이거든요. 뮤지션은 결국 음악으로 증명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저의 한 지인은 에픽하이의 음악이 음악 외적인 활동으로 인해 과소평가 받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더군요. 특히 타블로씨가 그런 것 같다구요. 그래서 저한테 물어봐달라고 했어요(웃음).

타 : 만약에 제가 과소평가 받고 있다면 가장 아쉬워할 사람은 바로 저죠. 제가 가장 기분 나빠야죠.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반대로 제가 쇼프로나 방송에 나가지 않았다면 과대평가를 받았을 거라는 얘기가 되잖아요. 그니까 제가 방송에 나가지 않고 제 자신을 아티스트로 포장하면 과대평가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아티스트로 저를 포장하고 신비주의 전략을 써서 과대평가를 받든, 제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면서 과소평가를 받든, 이미 그 평가들은 음악에 관한 것들이 더 이상 아니에요. 음악에 대한 평가는 음악에 대한 평가로 끝나야죠. 저는 에픽하이가 과대평가 받는 그룹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과소평가 받는 그룹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아요. 솔직히 저희가 과소평가 받는다고 해도 어차피 음악과 음악을 듣는 사람은 일대일의 관계에요. 이건 대중과의 관계가 절대 아니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전반적인 평가 같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차피 제 개인이 만든 음악을 다른 개인이 듣고 느끼면서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온 세상이 과소평가를 하던 과대평가를 하던 그 한 사람이 듣는 음악은 똑같을 거예요. 그것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요.

리 : 연결된 질문인데요. 쇼프로그램 속의 에픽하이와 앨범 속의 에픽하이 사이에는 나름대로 큰 간극이 존재합니다. 일례로 방송에 비쳐지는 유머러스한 에픽하이의 앨범에는 “Nocturne”같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지요. 물론 방송에 출연하시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한국의 현실상 주류 음악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테고, 실제로 방송에 흥미를 느끼셔서 하는 부분도 있을 테고, 힙합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에픽하이의 그러한 행보로 인해 힙합이 좀 더 넓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의미도 있겠죠. 즉 어떠한 한 가지 이유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아무튼 이러한 괴리를 팬들이 또 리스너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요? 에픽하이라는 팀의 행보와 지향점에 대해 아직도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타 : 가장 단순하게 말해볼게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요. 방안에서 매일 그림만 그려요.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요. 그런데 그 그림이 완성된 순간 그걸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그림을 들고 거실로 나왔는데 가족과 친척들이 잔뜩 놀러와 있는 거예요.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족과 친척들에게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하고 같이 밥 먹고 즐겁게 있다가 ‘제가 그린 그림 좀 보여드릴게요’ 하면서 보여줘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다음에 그들이 그림을 보고서 박수를 쳐주던지 아니면 ‘그림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 하던지 뭐 반응이 나오겠죠. 어쨌든 그림을 그렸던 공간과 그림을 보여주는 공간은 달라요. 그리고 그 둘의 방식과 규칙은 서로 달라요. 그림이 어둡다고 해서 그걸 들고 나가서 제가 어두운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인정받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림을 그리지 말고 친척들 사이에 직접 어둡게 앉아 있으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굳이 매체를 통하지 않더라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방송에 설 때는 국민들 앞에, 또 대중 앞에 서는 거고, 동시에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없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건데, 그 사람들을 하나의 큰 가족으로 바라본다면 그림을 그리는 공간과 그림을 보여주는 공간은 정말 다른 것 같아요.

리 : 그 말을 방송에서의 에픽하이와 음악에서의 에픽하이를 어느 정도 구별하고 계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타 : 네, 그런데 그게 다 우리에요. 저희가 양쪽에서 다 자주 볼 수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음악과 사람이 일치되는 것을 항상 바라는데 그렇게 따지면 웬만한 힙합 뮤지션들은 연애도 할 수 없는 거고, 사랑을 할 수도 없고, 효도도 못하는 거고, 정상적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게 되는 거죠. 예술과 예술을 하는 사람은 일치되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을 만들었다고 그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예술가라고 해서 예술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봐요. 그런 환상적인 논리나 예술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를 따질 거라면 차라리 우리나라의 예술 문화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편이 더 나을 거 같아요.

리 : 진솔한 답변 잘 들었습니다. 요즘 정말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려요.

에픽하이 : 네.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 주세요. 그리고 리드머의 기사들은 정말 풍부하고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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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 / 강일권, 김봉현 사진: 이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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