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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 -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이진석 작성 | 2017-11-07 19:55 업데이트 | 추천추천하기 19 | 스크랩스크랩 | 58,487 View

Artist: 에픽하이(Epik High)
Album: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Released: 2017-10-23
Rating:
Rating (2020) :
Reviewer: 이진석









그동안 에픽하이(Epik High)의 커리어는 전통적인 힙합의 장르 색을 지워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그들이 추구한 바이기도 했다. 에픽하이를 힙합 그룹이라는 틀에 묶고 싶지 않다는 욕구는 [Remapping The Human Soul]을 발표했을 때 인터뷰 등을 통하여 부각됐고, 앨범을 거듭하며 점차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원래부터 그들의 음악에 어느 정도 녹아있던 팝과 일렉트로닉은 물론, 밴드 사운드까지 점차 지분을 늘려갔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하나의 장르 안에 가둘 수 없는 음악은 수없이 나타나는 중이다. 오늘날 아티스트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특정 장르의 색을 더욱 견고히 하거나 장르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시도한다. 종종 이를 우열 관계에서 논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 요는 어느 쪽이든 결과물을 얼마나 완성도 있고 매력적으로 풀어냈는가이다. 그런 관점에서 에픽하이의 시도가 늘 성공적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융합의 과정이 거듭될수록 팀 자체의 색만 옅어지는 듯했다. 정규 7[99]는 그 대표적인 예였다.

 

그들의 경력을 통틀어 가장 적극적으로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했으나, 결과적으론 난잡함 이상의 감상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최근작이었던 [신발장]은 나름대로 반가웠다. 완성도가 썩 만족스럽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장르적인 정체성과 에픽하이 특유의 색이 중심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3년이 흘렀고, 아홉 번째 정규 앨범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이 발표됐다.

 

이번 앨범은 여러모로 [신발장]과 유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첫 트랙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는 이어질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올리기에 충분하다. 흥미로운 구성과 변주 위로 타블로(Tablo)와 미쓰라진이 짤막한 구절을 주고받으며,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특히, 가사적으로 과거 타블로가 겪은 고통과 어지러웠던 시국이 맞물려 자연스레 감정선을 끌어올린다. 다만, 첫 곡이 안긴 만족감이 오래가진 못한다.

 

에픽하이는 특유의 감성적인 무드 트랙으로 중심을 잡는 가운데, 이른바 힙합적인곡들을 번갈아 배치하여 더욱 또렷한 대비를 만든다. 이 같은 구성은 초반부에 도드라지는데, 문제는 완성도다. 개별 곡의 매력이 충분히 따라주지 못하다 보니 음악적인 균형을 잡긴커녕 주의를 흩트린다. 아이유와 함께한 연애소설은 대표적이다. 서정적인 루프 위로 간간이 주목할만한 표현이 지나가지만, 전반적으로 이전부터 드러난 안이한 팝-랩 넘버의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를 제외하고 귀를 잡아끄는 건 앨범의 후반부 정도다. 어느덧 서른 중반에 들어선 가장의 자리에서 친구들에게 보내는 어른 즈음에나 칩멍크(Chipmunk/*필자 주: 보컬 샘플의 피치를 높이 올리는 작법)와 크러시(Crush)의 보컬을 활용해 따스한 무드를 연출한 문배동 단골집은 마무리로써 괜찮은 여운을 남긴다. 나이를 먹고 바뀐 환경에 놓인 랩퍼가 과거를 회상하는 류의 가사는 흔하지만, 같은 재료도 어느 요리사가 다루는가에 따라 다르듯이, 이 곡에선 에픽하이의 장점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랩핑이 주는 감흥 역시 무미건조하다. 전작의 단체곡이었던 “Born Hater”의 후속곡 정도로 느껴지는 노땡큐는 대표적. 초빙된 랩퍼들에 비해 정작 곡의 주인인 에픽하이는 주목할만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한다. 다른 트랙들 역시 그들의 랩핑이 주는 쾌감보다는 객원 보컬들의 덕을 본 느낌이 강하다. 더불어 100% 영어 랩 트랙 “Here Come The Regrets”는 굳이 미쓰라의 가사까지 타블로가 담당해서 모든 벌스를 영어로 이끌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만큼 감흥이나 의미를 느끼기 어렵다.

 

사실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에 담긴 음악은 이전부터 그들이 해오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에픽하이는 장르적인 미를 파고들거나 과감한 실험을 감행하기보다 감성적인 측면을 파고들었고, 소소하지만 간간이 빛나는 은유와 철학을 녹인 가사로 고유의 영역을 구축했다. 다만, 항상 해오던 스타일의 감흥과 완성도가 낮아진 데다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스펙트럼마저 줄어들어 가사적인 매력 또한 상당히 옅어졌다. 에픽하이는 높아진 인기와 달리 어느 순간부터 음악적으론 하강곡선을 그렸다. 이번 앨범도 뒷맛이 다소 쓰다.



- Copyrights ⓒ 리드머(www.rhythmer.net) / 글: 이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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